물품 파손 등 불만신고 올해만 1만건 육박겉보기만 첨단… 분실사고 나도 원인 못찾아
지난달 27일 서울 노원구에 사는 정모(31)씨는 부친의 생일에 맞춰 인터넷으로 등산화를 주문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배송되지 않았다. 불안해진 정씨는 H택배 노원영업소에 전화를 해 배송이 언제쯤 되는지 물었다가 황당한 말을 들었다. 배송량이 많아 담당 택배기사의 부인이 대신 물건을 배달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 문밖에 놓고 왔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화를 누르며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택배사는 보상을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정씨는 "10일 동안 택배회사에서 아무 말이 없어 다시 전화했지만 '기다려보라'는 말만 해서 결국 한국소비자원에 조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택배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마구 집어 던져서 파손되는 경우나 지연배달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 판이다. 주문하거나 배달시킨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분실됐는지, 보상을 어떻게 해줄 것인지 등의 속 시원한 대답을 택배회사에서 듣기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택배회사의 배송처리과정이 허술할 뿐만 아니라 사고발생시 사후조치마저도 부실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실 택배회사의 택배처리과정을 확인하는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택배물품번호만 가지고 있으면 소비자가 인터넷상으로도 내 물건이 어느 배송단계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체계는 겉보기에만 그렇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화장품을 주문했던 D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닷새가 지나도록 물건이 오지 않아 인터넷으로 배송조회를 해보니 사흘 전 새벽 5시에 배달 완료한 걸로 나와 있었다. 물건을 배달한 Y택배사와 담당기사에게 확인해 보니, D씨 집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물건을 맡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D씨 집에는 할아버지가 살지 않는다. D씨는 "엉뚱한 곳에다 던져두고는 인터넷 배송조회란에는 버젓이 '배달완료'라고 해뒀더라"며 "인터넷 쇼핑몰이나 택배사, 택배기사 모두 내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요한 서류를 H택배사에 배달시켰다가 뒤늦게 분실된 사실을 확인한 모 회사는 서류박스의 배송과정을 추적하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류가 든 상자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택배사의 거점물류센터에 서류박스의 배송번호가 적힌 태그(배송장)만 있고 박스가 통째로 없어진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류상자가 2개의 거점물류센터를 거쳐 분류되는 과정에서 마구 다뤄지는 바람에 태그가 뜯어져 무적(無籍)이 된 상자를 찾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배달시킨 물품이 물류센터의 배송분류 과정과 택배기사의 배달과정 곳곳에서 분실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국내 택배업은 아직 낙후돼 있어 물류센터에서도 사람들이 일일이 물품을 분류해 이동하는 곳이 많고, 폐지 줍는 사람 같이 외부인 출입도 어렵지 않다"며 "물품이 없어진 경우 딱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분실사고가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태반"이라고 털어놓았다. 택배업체의 한 물류센터 직원은 "2, 3년 전 내비게이션이 한창 보급될 때 택배기사들이 훔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워낙 물품이 자주 없어지는 데다, 누가 빼돌렸는지 확인도 되지 않아 일정지역을 맡은 기사들끼리 연대책임으로 돈을 모아 보상하는 내부관행마저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과 지방자치단체, 소비자 관련 시민단체에 접수된 택배관련 불만신고는 올해만 무려 9,600여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대부분 물품 분실과 파손에 대한 부적절한 조치와 택배기사의 불친절이 민원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를 포함해 18개 택배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택배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부실한 사고 예방 및 보상 체계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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