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혈액형을 알 수 있는 가검물, 20~30대로 보인다는 피해자의 증언. 2004년 5월부터 7년여간 일어난 여중고생 27명 성폭행 사건에 대한 단서는 이게 전부였다. 그나마 "짐을 옮겨 달라"며 유인한 수법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일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게 추가 단서였다.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위기에 있었다. 그러다가 올해 4월, 피의자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이 경찰에 입수됐다.
사건을 맡게 된 최선희(35) 경장은 CCTV 영상이 송곳처럼 뇌리에 박혔다. 비슷한 사건을 2005년 맡았다가 진척 없이 끝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에 범인은 분명 같은 인물이었다. 동종수법 전과자 가운데 용의자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7,000여명. 대상자를 추리는 게 수사의 시작이었다. "1만명이라도 용의자가 추려졌다면 매달려야죠. 아동 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넘길 수가 없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한 달 넘게 CCTV 영상과 피의자 얼굴을 대조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어요."
끈질긴 추적은 결실을 맺었다. 피의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소재는 금세 파악됐다. 최 경장은 지난 달 21일 오전 7시께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피의자 A씨(29)를 검거했다.
최 경장은 오현섭 전 여수시장의 비리를 밝힌 경찰청 특수수사과 이용택 경위 등 16명과 함께 29일 경찰청 특진 임용식에서 한 계급씩 진급, 경사가 됐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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