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 딱 이틀 남았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나로호와 천리안위성 발사 등 올해 과학계엔 유난히 굵직한 현안이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지나갈 뻔했다. 2010년은 현대물리학의 출발점인 양자(量子)론이 탄생한지 110년 되는 해였다. 물리학자마저도 어려워한다는 양자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자론은 생각보다 우리 삶과 가깝다. 아니, 우린 모두 지금 ‘양자론적’ 세상에 살고 있다.
양자론이 지배하는 인체
1900년 12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베를린대 교수는 독일물리학회에서 에너지가 진동수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에너지가 진동수에 특정 상수를 곱한 값의 정수배로 얻어진다는 내용이다. 바로 양자론의 핵심 개념이다.
양자론이 나오기 전 고전물리학에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연속적이었다. 그러나 양자론은 에너지를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단계별로 띄엄띄엄 변하는 불연속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고전물리학에서 연속적인 흐름인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양자론 출현 이후엔 띄엄띄엄 한 입자성도 갖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같은 양자론적 현상은 약 1억분의 1cm의 원자와 이들로 이뤄진 분자 같은 미시세계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전현상을 일으키는 생체분자 DNA는 여간 해선 구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에너지가 낮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구조가 바뀌려면 원래 갖고 있는 에너지 단계를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만큼 큰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데, 주변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변화는 그에 못 미친다. 방사선 같은 강력한 에너지라면 모를까. 방사선을 받은 DNA는 에너지 단계가 달라져 구조도 변한다. 이게 바로 돌연변이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반도체도 양자론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다. 도체는 전자들이 가진 에너지가 연속적이라 흐름이 자유롭다. 전자의 흐름이 바로 전류다. 부도체는 전자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받은 에너지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반도체는 에너지 단계 간 차이가 작아서 적은 에너지를 받아도 일부 전자가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전기가 통하기도 하고 안 통하기도 한다.
전기와 핵폭탄을 만들어내는 원자력, 저항이 없는 초전도현상 같은 최첨단 기술 역시 양자론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주식 대박이 어려운 이유
고전물리학은 측정이 가능하다면 사물이 어디 위치할지, 어디로 얼마나 운동할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역학 계산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아냈다.
그러나 양자론이 등장하면서 물리학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양자론에선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자론은 물체의 존재를 확률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 신문을 읽는 독자가 지금 마루에 앉아 있다 해도 방에 존재할 확률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대물리학에서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은 이 같은 개념이 없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양자론의 핵심 개념인 ‘불확정성의 원리’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 발표했다.
고전물리학이 바라본 세상은 참 아니면 거짓만이 존재하는 논리적인 세상이었다. 하지만 양자론은 세상에 참, 거짓, 그리고 ‘참과 거짓의 중첩’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특정 사건이나 현상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100% 정확히 내다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비논리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세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양자론의 시각이 더 그럴듯하다. 세상 일이 어디 참 아니면 거짓으로 무 자르듯 양분되기만 하던가. 사람들 입장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같은 일이 누구에겐 참이 되고, 누구에겐 거짓이 되기도 한다. 또 일기예보나 주식시장만 봐도 미래를 100%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해커의 천적, 양자암호 등장 눈앞
과학자들은 21세기를 양자공학의 전성시대라고 말한다. 양자론이 물리학과 화학을 벗어나 더 폭넓게 응용될 거라는 전망이다. 양자암호와 양자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양자암호는 최근 일본이 휴대전화 보안체계에 적용해 상용화 직전까지 왔고, 양자컴퓨터는 약 10년 뒤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등장하면 슈퍼컴퓨터 수백만 대를 연결해야 가능했던 일을 양자컴퓨터 한 대가 거뜬히 해치우고, 해커가 결코 깰 수 없는 암호체계도 생긴다.
안 교수는 또 “사람 신경망을 이루는 분자들의 에너지 상태를 전자를 이용해 변화시킬 수 있는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미세소자를 치매 환자나 시각장애인에게 이식해 치료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자화학과 의료기술의 융합인 셈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