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바와 같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가 선정됐다. 머리는 처박았으나 꼬리가 드러난 모습이니 뭔가 숨기려 하지만 실체는 이미 다 알려진 상황이다. 반근착절(盤根錯節) 자두연기(煮豆燃萁), 이 두 가지가 장두노미와 끝까지 경합을 했다고 한다. 반근착절은 뿌리와 마디가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해결하기 힘든 형세를 의미하고, 자두연기는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말이니 같은 부류 간에 물고 뜯고 싸우는 형국을 말한다. 이 셋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했더라도 2010년을 압축해 표현하는 데 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 연말뿐 아니라 연초엔 '희망의 사자성어'가 발표돼된다. 올해 초엔 그 희망을 강구연월(康衢煙月)로 표현했다. 큰 길거리에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모습이니 그야말로 아무런 근심이 없는 태평성대를 의미한다. 그러한 희망은 3월에 발생한 서해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여지없이 부서져 버렸다. 11월 연평도 피격사건과 12월 국회 예산안 폭력사태까지 그야말로 하루도 강구연월의 시간을 구가하지 못했다. 모든 사안에서 '장두(藏頭)'에 몰두한 쪽과 '노미(露尾)'를 지적하는 쪽이 '자두연기'처럼 싸워댔으니, 사회는 '반근착절'로 꽁꽁 얼어붙었다.
■ 지난해엔 연초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희망했으나 결산은 방기곡경(旁岐曲逕)이었다.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스스로 원칙을 굽히지 말자며 시작했으나, 샛길과 굽은 골목을 다니듯 정당한 방법을 피하고 억지스럽게 지내왔다는 반성이었다. 앞서 2008년은 연초 희망이 광풍제월(光風霽月)이었으나 연말 평가는 호질기의(護疾忌醫)였다. 군자의 인품이나 치세(治世)를 맑은 날 바람과 비 갠 후의 달빛에 비유하여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담았다. 하지만 채 1년도 안돼 병을 숨기고 의사를 속이듯 잘못이 있음에도 남의 충고를 멀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 교수신문은 교수와 칼럼니스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추천과 투표로 2001년부터 이를 발표해오고 있다. 연초엔 쉬운 한자로 신조나 가훈을 삼도록 하고, 연말엔 생소한(?) 말을 찾아내 관심을 끈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에 나타난 새 정부 3년의 세월은 투명한 사회를 원했으나 소통부재로 이어졌고(2008년), 원칙이 지켜지길 바랐으나 억지와 편법이 난무했고(2009년), 근심걱정 없이 살고 싶었으나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국민들 마음 고생이 컸다(2010년). 조만간 2011년 '희망의 사자성어'가 발표될 터이다. 쉬운 단어라면 역지사지(易地思之)도 괜찮은데.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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