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한반도 정세 변화의 징후가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외교부, 통일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6자회담 재개는 물론 남북대화 개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외교안보 정책의 변화 기류를 보여준다. 특히 ‘흡수 통일’이 아닌 평화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연평도 도발 국면 이후에 대화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을 겨냥한 상징적 제스처로 풀이된다.
천안함 사태 및 연평도 도발 이후 정부는 대화와 제재의 병행 즉 ‘투(two) 트랙’ 노선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대화 가능성은 현실적 변수로 상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류가 바뀌고 있다. 여전히 투 트랙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6자회담과 고위급 남북대화 등이 추진될 가능성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배경에는 내년 1월19일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을 앞둔 미중 양국의 한반도 정세 관리 움직임이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중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 중 하나는 한반도 긴장 완화”라면서 “중국은 북한을 상대로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한미일 3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한해 한반도 긴장 고조로 충돌해왔던 미중은 6자회담 재개 환경을 주도적으로 창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우리와 북한도 이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자세를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런 큰 구도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원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정부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성은 핵 폐기에 대한 북한의 의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2차례나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북한이 더 이상 군사적 도발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우리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외교라인 관계자는 “모든 대화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도발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입장은 북한의 적극적 호응이 있어야만 한반도 대화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남북협상을 통해 북핵 폐기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 문제가 논의되고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이 대통령의 입장에 비춰 상당히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지난해 진행됐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 비밀접촉이 재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의 적절한 호응과 호의적인 국내 정치적 지형이 비밀 접촉 재개의 전제조건이 될 듯하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대비한 튼튼한 안보태세라는 기존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북한 도발에 대한 ‘가차없는 반격’등을 언급했던 이 대통령은 아직은 북한 지도부의 변화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안정 관리보다는 통일에 방점을 둔 통일외교, 국민들의 통일 인식 변화 등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대화를 모색하는 한편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방침을 강조하는 강온 양면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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