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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 10년, 2000~2010 한국 문화] <5.끝> ''부자아빠''에서 ''정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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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 10년, 2000~2010 한국 문화] <5.끝> ''부자아빠''에서 ''정의''로

입력
2010.12.2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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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욕망'서 '공공의 이익'으로…시민들 시선 옮겨가다

뉴밀레니엄 시대의 개막이라는 장밋빛 레토릭과 함께 찾아온 2000년대. 그러나 새 밀레니엄이 열리고도 계속된 현실은 IMF 구제금융체제 하의 한국이었다. 신자유주의의 속령이 된 한국사회에는 '무한경쟁의 내면화'라는 이데올로기가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경쟁의 쓰나미를 헤쳐나갈 수 있는 생존 전략에 목말라했다. 한국의 지성계는 거대한 괴물같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 체제를 모색하는 한편, 때로는 산사로 들어가 내면 탐구의 세계에 침참하고 때로는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켜기도 하는, '개인'들의 의미를 해석하며 지난 10년을 통과했다. 독서 동향, 학술 담론, 지성계를 풍미한 사상을 중심으로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저명한 교육자로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라고 가르쳤지만 평생을 카드대금과 주택융자금 갚기에 급급한 '가난한 아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돈과 투자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평생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교육시킨 '부자 아빠'. 둘 중 누가 성공한 인물인가를 정색하고 되물은 책 <부자 아빠 가난한> . 2000년에 출간돼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의 성공은 "부자가 되고싶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라는 새로운 시대의 메시지로 읽혔다. 빚이 많으면 나라도 망할 수 있구나 하는 뼈아픈 체험은 개인들에게 믿을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고, 남이야 어떻게 되건 성공만 하면 된다는 신화를 확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 같으면 얄팍한 처세서 취급 받았을 책들이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아래 대중을 파고들었다. 지금 당장 달콤한 마시멜로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참아내는 자만이 미래에 누구보다 많은 마시멜로를 얻을 수 있다고 속삭이는 <마시멜로 이야기> (2006)나, 긍정적 마인드와 정신력만 갖추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주문을 외는 <시크릿> (2007) 같은 책이 각각 그 해의 최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나(myself)'를 세상의 중심에 두는 자기계발서, 경제ㆍ경영서, 재테크 책들의 인기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의 욕망과 함께 한편으로는 불안한 영혼을 위로받고 내면적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도 커졌다. 웰빙족의 등장, 템플스테이의 확산 등과 같은 맥락으로 푸른눈의 현각 스님의 자전적 구도기인 <만행> (2000), 죽음 직전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성찰하게 한 <인생수업> (2006) 등이 큰 반향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부동산거품 붕괴로 촉발돼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거침없이 질주하던 신자유주의 기획의 정당성을 회의하게 한 사태였다. 대중은 자기계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어떻게든 성공하려 애썼지만 현실은 부자와 가난한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격차 그 자체였다.

<88만원 세대>(2007)와 소설 <제리> (2010) 등이 환기시킨 청년실업 문제,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김예슬의 선언이 상징한 학문의 자본 예속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개인을 벗어나 바깥으로 시야를 돌린 대중은 공동체의 운영원리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2007)에 이어 신자유주의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따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를 올해 출간, 2개월 만에 23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은'사회정의'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한국사회에서 공적 담론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지난 10년간 출판의 흐름은 나만의 성공, 나만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였던 개인들이 자본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도덕이 무엇인지 같은 근본적인 것을 탐색하는 쪽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며 "이런 움직임이 사회적 연대로 확산되고 현실변혁의 동력으로 힘을 받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들뢰즈에서 지젝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맞물려 21세기 들어 가속화된 마르크스적 공동체의 전망에 대한 회의는 학계에서는 개인 욕망의 해방에 천착한 철학자 질 들뢰즈, 정신분석을 통한 문학텍스트 분석의 대가인 자크 라캉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라캉이 주로 문예이론, 문화연구 등 주로 지식인들의 담론으로 각광받았다면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간다는 들뢰즈의 '노마드'(유목민) 개념은 대중의 공감대도 이끌어냈다. 이 개념은 철학자 이진경이 2002년 책 <노마디즘> 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널리 퍼졌는데, 이는 민주화 이후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으로 고무된 대중이 자유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던 당시의 정치ㆍ문화적 상황과도 관련있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들뢰즈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례적인 반향은, 대중이 만끽하던 해방감과 자신감을 들뢰즈가 지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후 외부의 경제위기(금융위기)로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자 대중들 역시 개인의 문제에서 정의와 불평등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2008년의 촛불시위는 계몽과 선동의 대상에서 정치적 저항의 주체로 떠오른 불특정한 대중에 대한 주목을 유도했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복수화ㆍ다양화ㆍ혼성화하면서 더 이상 노동계급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려워진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성을 '다중(多衆)'으로 명명한 이탈리아의 급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로부터 새로운 사회변혁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촛불시위는 또한 검역주권, 표현의 자유, 인권과 같은 한국사회에서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2000년대 초반 학계의 관심을 '개인의 욕망'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의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에는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모색한 정치철학자들에 관심이 모아졌다. 예술적 체험을 통해 정치적 변혁을 모색한 자크 랑시에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을 주목한 조르조 아감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한 운동가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현재 학계와 출판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스타 철학자인 지젝은 2000년대 초에는 대중문화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한 학자로만 이해됐으나 이후 헤겔, 레닌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치철학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2000년대 서구 철학의 수용이 한국사회의 정치ㆍ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들뢰즈에서 지젝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맞물려 21세기 들어 가속화된 마르크스적 공동체의 전망에 대한 회의는 학계에서는 개인 욕망의 해방에 천착한 철학자 질 들뢰즈, 정신분석을 통한 문학텍스트 분석의 대가인 자크 라캉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라캉이 주로 문예이론, 문화연구 등 주로 지식인들의 담론으로 각광받았다면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간다는 들뢰즈의 ‘노마드’(유목민) 개념은 대중의 공감대도 이끌어냈다. 이 개념은 철학자 이진경이 2002년 책 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널리 퍼졌는데, 이는 민주화 이후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으로 고무된 대중이 자유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던 당시의 정치ㆍ문화적 상황과도 관련있다.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들뢰즈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례적인 반향은, 대중이 만끽하던 해방감과 자신감을 들뢰즈가 지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후 외부의 경제위기(금융위기)로 사회 전체가 충격을 받자 대중들 역시 개인의 문제에서 정의와 불평등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2008년의 촛불시위는 계몽과 선동의 대상에서 정치적 저항의 주체로 떠오른 불특정한 대중에 대한 주목을 유도했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복수화ㆍ다양화ㆍ혼성화하면서 더 이상 노동계급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려워진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성을 ‘다중(多衆)’으로 명명한 이탈리아의 급진 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로부터 새로운 사회변혁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촛불시위는 또한 검역주권, 표현의 자유, 인권과 같은 한국사회에서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2000년대 초반 학계의 관심을 ‘개인의 욕망’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신자유주의의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에는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모색한 정치철학자들에 관심이 모아졌다. 예술적 체험을 통해 정치적 변혁을 모색한 자크 랑시에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을 주목한 조르조 아감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한 운동가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현재 학계와 출판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스타 철학자인 지젝은 2000년대 초에는 대중문화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한 학자로만 이해됐으나 이후 헤겔, 레닌 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치철학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2000년대 서구 철학의 수용이 한국사회의 정치ㆍ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복지는 논쟁중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문제가 선거 쟁점이 됐고, 최근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형 복지’를 정책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치권에서 가열되고 있는 복지국가론은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다.

올 하반기 간행된 학술지 중에서 복지와 관련된 기획이 빠진 곳은 찾기 드물 정도다. ‘복지는 진보의 전유물인가’ ‘국가주도 복지냐 민간주도 복지냐’ ‘증세부담과 재정압박을 돌파할 방안은 무엇인가’ 등등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진보 성향 학자들이 진보정당의 ‘보편적 복지’ 구호에 문제를 제기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는 전면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로 규정한 진보 진영에 이의를 제기하며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는 전면 무상급식 정책은 저소득층에만 무상급식을 하면 된다는 보수정당의 ‘시혜적 복지’보다는 진보적인 접근이지만 반드시 ‘무상’을 주장하며 다른 논의를 봉쇄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전면 무상교육을 하지만 급식비는 부모의 소득과 연계하는 프랑스의 예를 거론하는데, 이 제도는 오히려 시민들이 자신의 사회적 계층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훈련을 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진보 진영의 보편적 복지 구호의 적실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을 빈부격차가 극심해 있는 자들을 위한 복지는 잘돼있으나 없는 자들을 위한 복지는 형편없는 ‘분리된 복지국가(divided welfare state)’로 규정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심각한 현실에서 진보 진영이 말하는 보편적 복지는 말 그대로 ‘쏟아붓는’ 포퓰리즘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시장 구조의 평준화나 균등화가 불가능하다면, 진보 진영은 보편적 복지의 구호를 넘어서는 창의적 복지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는 진보 진영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형 복지’ 등을 놓고 보수 진영에서도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과 정책 제안이 이어질 전망이다. 보수적 입장의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수 진영의 복지정책은 국가보다 민간 주도의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며 “보수 진영 내에서도 민간 주도 복지의 지속성 확보,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조화 등에 대한 활발한 논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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