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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마음이 있어야 눈물도 있다

입력
2010.12.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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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 성탄 전야에야 보게 됐다. 전날 KBS의 감동대상 시상식과 연이은 특집방송 <이태석 신부, 세상을 울리다> 를 우연히 봐 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동네 성당에서 성탄절 특별 프로그램으로 상영을 해 굳이 이른 아침 극장을 찾는 수고 없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내친김에 지난 4월 아내가 둘째 아들 첫 영성체 기념으로 선물한, 암 투병 중에 그가 썼다는 책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까지 읽었다.

울어라 톤즈, 그리고 당신

<울지마 톤즈> 를 두고 여기저기서 '감동', 재상영, 관객 20만명 돌파라고 떠들어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었다. 영화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가톨릭 신자이니 종교적 이유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 신부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는 것이 싫었고, 그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싫었고, 그 모습에 눈물 흘릴 자신이 싫어서 였다.

48세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는 울지 않았다.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8년 동안 가난하고 헐벗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한센인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감사라고 생각했다. 불의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더 오랫동안 나눠주지 못한 것만을 안타까워하는 그의 아름다운 향기가 눈물이 되어 돌아온다.

사람들은 안다. <울지마 톤즈> 안에서 톤즈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두 눈물을 흘리는지를. 그들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한 한 아름다운 신부에게 감사한다. 그런 천사 같은 신부를 잃은 것을 슬퍼한다. 소년은 악기를 배우려는 자신에게 "먼저 착한 마음부터 가져라"고 말한 신부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고, 시력을 읽은 늙은 한센인은 차라리 자기를 먼저 데려가지 왜 뭉툭한 손을 기꺼이 잡아준 신부,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신부를 왜 먼저 데려갔냐고 새벽마다 하느님께 눈물의 기도로 항의한다.

그들의 눈물은 자신을 위한, 향한 것이 아니다. 신부를 위한 눈물이다. 신부처럼 내 가진 것 비록 초라할지라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자는 다짐이자,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다. 이태석 신부가 그들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학교도, 악기도, 병원도 아니다. 바로 그런 마음일지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우리에게 이태석 신부가 남긴 선물도 역시 그것일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우리가 그를 보며 흘린 눈물에 그 부끄러움이 녹아있다. 의사이기도 한 그는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에서 우리의 삶이, 마음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도 진단했다. 진리와 사랑의 물이 급성으로 빠져나가 영혼이 콜레라에 걸려 위급한 상태. 그는 가진 것 없는 단순한 톤즈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삶의 맛, 행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비결은 서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 자그마한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 텅 비워진 가난한 마음에 있다고 했다. 행복을 향해 날아가지 못하는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지금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무겁기 때문이다.

눈물의 의미를 잊지 말자

<울지마 톤즈> 를 보고 우리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적어도 잠깐일망정 그 사실을 깨닫고, 나누지 못하고 살아온 삶을 반성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 눈물만이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어디에서 나왔든 함부로 비웃어서는 안 된다. 돌아서자마자 말라버릴망정 타인을 위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반성은 거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크기, 사회의 크기 역시 그 사랑과 반성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수필가 김진섭은 <체루송> 에서 "눈물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많이 울자.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도, 가난과 아픔을 보고도, 아름다운 희생과 봉사 이야기를 듣고도 울면서 그 순간만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해 보자. 이태석 신부의 삶과 죽음을 보며 "울지마 톤즈"라고 하지 마라."울어라 톤즈" "울어라, 사람들아" 라고 해야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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