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이 며느리를 돌려보내야지 방귀 한 번 더 뀌었다가는 집터만 남게 생겼거든. (중략) 떡 조금 해 가지고 손에 들려서 시아버지 앞장세워 친정으로 보냈어”(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교과서).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방귀쟁이 두 사람(남성)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의 방귀가 더 세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교과서).
어떻게 보면 하찮은 방귀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교과서는 방귀를 뀌는 것조차 남녀 간 다른 이미지로 설명한다. 앨버트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대로라면 성차별 고정관념이 어린이에게 공적 교육을 통해 학습되고 있는 것이다.
27일 여성가족부가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초등학교 1~4학년 및 중학교 1학년 교과서 110권을 대상으로 성차별 실태를 분석한 결과, 교과서의 남성 등장인물은 63%로 여성(37%)의 두 배에 가까웠다.
교과서에 인용된 다른 저작물 문장이나 삽화의 경우 그 격차가 더욱 컸다. 특히 중학교 교과서는 71대 29로 남성이 많았다.
등장인물을 직장과 일터를 배경으로 설명한 문장은 남성이 여성의 7배나 됐다. 반면 가사활동을 표현한 문장에는 여성이 남성의 4배, 가사활동의 사진과 삽화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5배에 달해 성역할을 고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결과는 교과서가 남녀 성평등 인식을 개선해야 하는 교육적 효과가 없음을 보여 준다. 또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정을 마치 남성의 전유물처럼 상징화한 것도 성차별적 요소다. M출판사에 나온 중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을 나타내는 고사성어이다. (중략)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고 남자 아이들의 우정을 강조하는 내용이 기술돼 있다. 또 C출판사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춘추시대에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와 젊은 나무꾼 종자기의 우정을 묘사한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역시 ‘우정은 남성의 것’이라는 세계관을 반영했다는 게 여성정책연구원의 분석이다.
아울러 성폭력 예방을 가르치는 내용에서는 K출판사와 C출판사의 기술ㆍ가정교과서가 성폭력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단정 하에 피해 여성들이 겪는 후유증만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 C출판사 교과서의 서술과 삽화는 여성이 거부하거나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묘사해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심어 줄 우려가 있다.
조민경 여성부 성별영향평가과장은 “방귀 이야기는 동일한 행동이라도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른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하는 단적 사례”라며 “여성이 사회 중심축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교과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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