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과 승부근성입니다."
'테니스를 잘 치려면 무엇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용일(38) 테니스 국가대표 신임 감독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는 단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멘탈(Mental)을 강조했다. "선수와 지도자로 지내는 동안 선천적으로 기량을 타고난 A급 선수들을 몇몇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과 이를 지탱해주는 정신력이 없는 선수들은 한 낱 바람 앞에 촛불마냥 이내 꺼지고 말더군요."
그는 또 "신체조건과 테크닉 면에서 누가 봐도 될성부른 떡잎인데 조금이라도 힘이 부친다고 생각하면 주저앉아 버리는 '테니스 유망주'들에게 기대를 접었다"며 자신의 테니스 리더십은 헝그리 정신 되찾기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2010 데이비스컵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2그룹으로 밀려난 한국테니스의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 긴급 투입된 윤 감독을 지난 23일 춘천에서 만났다.
그는 소속팀(삼성증권) 코치로서 동계훈련차 이곳에서 20여일 동안 합숙 중 이라고 말했다.
"입으로는 'ATP(남자프로테니스)투어대회 정상에 오르겠다'고 해놓고 연습은 남의 일 인양 사양하는 웃지 못할 선수도 겪어봤습니다. 야단도 치고 타일러도 봤지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개념상실' 형태 앞에선 백약이 무효더군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지 불과 일 주일 남짓. 하지만 그의 어깨에 한국테니스의 미래가 달렸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윤 감독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듯 다부진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조동길 테니스협회 회장이 '당신이 나서서 한국테니스를 일으켜 보라'는 부탁을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어서 감독직을 맡았다"고 말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제의가 있었지만 소속팀 코치로서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며 사양했다는 그는 협회장의 계속된 권유를 거부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결국 수락했다고 덧붙였다.
"최우선 과제는 데이비스컵 1그룹 복귀입니다. 3월초 시리아를 상대로 2그룹 1라운드 시합이 예정돼 있습니다. 시리아를 꺾으면 6,7월쯤에 파키스탄과 2라운드에서 대결할 가능성이 크고 이어 태국을 3라운드에서 만날 듯 합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대표팀의 1년 스케줄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와는 첫 대결이라 현재로선 정보가 없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는 대표팀을 맡으면서 국가대표 8명중 4명을 고교생으로 선발했다. 고교생들의 반란으로 불릴 만큼 역대 대표팀 구성에서 이런 사례가 없었다. 그는 새로 합류한 고교생 3인방을 눈 여겨 봐 달라고 말했다. 남지성(동래고), 노상우(두원공고), 정홍(삼일공고)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정석영(동래고)과 함께 한국 테니스의 미래로 일컬어진다. 2011 데이비스컵에서 이들을 적절히 투입할 예정이라는 윤 감독은 내년 1월초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전지훈련을 떠나 2월 7일 귀국할 예정이다.
"전훈 기간 중 이들을 퓨처스(가장 등급이 낮은 프로무대) 대회에 출전시켜, 경험을 쌓도록 할 생각"이라는 그는 "투어대회를 통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자만이 승리의 달콤함도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후배들에게 "안방 챔피언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 패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비록 돈이 없어 배가 고프더라도 투어대회에 나가야 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서도 우리가 남녀복식에서 동메달 2개에 그쳤지만 대만은 남자단체전과 여자복식, 혼합복식 등 3개의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대만선수 개개인은 우리에 비해 실력이 나은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다. 투어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이들은 자비를 들여 투어를 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 너 자신은 어떤가?"라며 승부근성을 자극했다.
● 윤용일 감독은
윤용일 감독은 1995년, 97년 후쿠오카, 시칠리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2연패하는 등 10년 동안 한국테니스의 대표주자였다. 이듬해 98년 방콕아시안게임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단체전에서도 이형택과 함께 금메달을 합작해 2관왕에 올랐다. 2003년 은퇴 후 삼성증권 코치로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전영대 대한테니스 협회 부회장은 "윤감독은 국내외 테니스 흐름을 꿰고 있어 기대가 크다"며 "대표팀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형택 테니스아카데미 재단 이사장도 "한때 아시아 1인자로서 카리스마를 갖췄다"고 평했다.
춘천=글ㆍ사진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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