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연말기획/ 2010 진 별·말말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연말기획/ 2010 진 별·말말말

입력
2010.12.26 03:12
0 0

올해도 여럿 큰 별이 졌다. 당신의 삶으로 세상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스스로 옳고 험한 길을 걸음으로써 험한 세상의 시린 삶들을 다독였던 이들. 그 분들이 남기고 간 마음들을 되새겨 별 진 자리처럼 휑한 마음들을 채우고자 한다.

지난 3월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스물 둘(1954년)에 출가한 스님은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 칩거하던 시절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론 그것에 얽매인다'는 가르침을 담은 에세이 <무소유> (1976년)를 출간, 이래로 지금까지 큰 울림을 남겼다. 이후로도 스님은 불교적 가르침으로 세속의 삶을 보듬고 일깨우는 책을 잇달아 발간, 식지 않을 존경을 받고 있다.

12월 5일에는 '시대의 양심'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70년대 냉전 이데올로기와 독재에 굽힘 없이 맞서며 5차례나 옥고를 치른 진보 언론인이자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1974), <우상과 이성> (1977)은 당대 지식 사회와 젊은이들에게 쏟아진 사상적 세례였고, 그 은혜를 두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고인을 '사상의 은사'라 칭했다.

북한 주체사상 이론가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씨는 10월 10일 눈을 감았다. 향년 87세. 그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노동당 비서를 지내며 권력 서열 13위에 오른 핵심 권력층이었지만 김정일과의 갈등으로 귀순, 북한의 체제와 권력을 비판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힘을 쏟았다. 지난 14년간 고인은 북한의 공개적 암살 협박에 시달렸으며, 한국 정부와도 때로는 미묘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국 패션의 오늘을 있게 한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8월 12일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서울 반도호텔 패션쇼를 통해 국내 최초 남성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래 고인은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 프랑스 파리에서 쇼(1966년)를 가졌고, 미국 뉴욕,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 국내외 수 백 차례의 패션쇼를 개최했다. '김봉남'이란 본명의 친근함과 즐겨 입던 흰 옷, 독특한 화장법, 어눌한 말투 등으로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과 사랑을 누렸다.

1979년 12ㆍ12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신군부에 맞섰던 장태완 전 국회의원은 7월 26일 79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당시 30년 동안 몸 담았던 군에서 강제로 예편당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와 외아들까지 잃는 등 불행을 겪었으나 12ㆍ12사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공개 증언하며 진실을 알렸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 명예를 회복했다. 천안함 사건 실종 장병들을 구하다 3월 30일 순직한 한주호 해군특전대(UDT) 준위 역시 시민들을 비탄에 젖게 했다.

종교계에서는 담임 목사 세습 관행을 깨고 한국 교회의 화합운동을 이끈 옥한음 사랑의교회 원로목사가 9월 2일 향년 72세로 소천했고 아프리카 오지인 수단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들을 돌봐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 이태석 신부가 1월 14일 48세로 선종했다.

재계에서는 중용(中庸)으로 63년간 삼양그룹을 이끈 김상홍(향년 87세) 삼양그룹 명예회장, IMF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기업을 있게 한 설원봉 대한제당 회장(향년 62세), 대신증권을 창업한 '증권가 거목' 양재봉(향년 85세) 명예회장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문화계에서도 여러 스타를 잃었다. 바보 연기로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원로 희극인 배삼룡(향년 84세)씨가 눈을 감았고, 구수한 입담과 성대모사로 인기를 얻었던 백남봉(본명 박두식ㆍ향년 71세)씨도 운명했다.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트위스트 춤을 선보였던 원로배우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ㆍ향년 74세),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티아라 전보람의 할머니인 가수 백설희(향년 83세) 씨도 우리 곁을 떠났다. '비내리는 호남선' '마포종점' 등 숱한 명곡을 작곡한 작곡가 박춘석씨도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탤런트 최진영, 한류스타 박용하, 영화감독 곽지균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운명을 달리해 큰 충격을 던져 줬다.

문단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를 번역해 신화 바람을 일으킨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씨, <잉여인간> 을 쓴 전후(戰後) 1세대 작가 손창섭씨, 만화 '꺼벙이'와 '순악질 여사'로 유명한 길창덕씨가 별세했다.

학계에서는 한반도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한 것과 금속활자가 서양의 구텐베르크 보다 200년이나 앞선 점을 입증한 사학자 손보기씨가 향년 88세로 타계했고, 한국 미술사학계의 거목 진홍섭씨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해외에서는 레흐 카진스키 폴란드 전 대통령은 4월 10일 '카틴 숲 학살 사건' 추모 행사 참석 차 특별기를 타고 러시아 스몰렌스크로 가다 항공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61세를 일기로 숨졌다. 21년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 장기 집권하며 국제 스포츠계를 주물렀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도 4월 21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눈 먼 자들의 도시> <수도원의 비망록> 등을 쓴 포르투갈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6월 18일 향년 88세로 타계했고,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을 쓴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도 1월 27일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이 말에 웃고 저말에 울고 올해도 '말풍년'

세태를 반영한 많은 말이 쏟아졌다. 큰 울림을 선사하거나 풍자로 가려운 곳을 긁어 준 말도 있었으나 비웃음과 공분을 산 말도 있었다.

3월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그 동안 풀어 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는 유서로 당신의 책을 절판시킬 것을 주문,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를 실천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서점으로 몰려가 스님의 저서를 줄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렸다.

여야가 총리 인사청문회로 한 창 힘겨루기를 할 때인 8월 25일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김태호 총리 후보자에 대한 각종 추가 의혹이 제기되자 "죄송한 총리, 현금 총리, 양파 총리, 떴다방 총리"라며 매섭게 몰아붙였고 김 후보자는 "까도 까도 나올 것은 없다"고 반박했으나 결국 나흘 후인 29일 자진 사퇴했다.

하반기 한반도를 요동치게 한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무수한 말을 낳았다. 다음 날인 24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의 대응 사격이 늦었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스타크래프트처럼 (저쪽이) 쏘면 우리도 바로 사격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같은 날 연평도를 찾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잿더미에서 검게 그을린 보온병 2개를 짚어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했고 곁에 있던 같은 당 황진하 의원은 "이게 76㎜, 이거는 122㎜ 방사포 같다"고 한술 더 떠 실소(失笑)를 자아냈다. 변웅전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은 12월 1일 "아무리 군 미필자 모임인 정부와 여당이라고 해도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하느냐"며 "그러면 보온밥통은 핵무기에 속하는 것 아닌가"고 비판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3월 내부강연에서 "(천안함) 유족들 동물처럼 울고불고 과민,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언론에서 보도해서는 안 된다",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거다"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을 일으켰다. 강용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사석에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다 줄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라고 한 말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요즘 룸(살롱)에 가면 자연산(성형수술 하지 않은 여성)을 찾는다"는 등 여성 비하 발언도 있었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3월 경영에 복귀하면서 사내 트위터에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며 위기론을 펼쳤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2년 대한생명 인수로비, 2007년 보복폭행에 이어 12월 1일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자 "제 팔자가 세서 그런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스포츠 스타들도 울림이 있는 말을 남겼다. 20세 이하 여자축구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대표 지소연 선수는 "엄마한테 찜질방을 차려주고 싶다"고 말해 팬들을 뭉클하게 했고 올림픽만 네 차례 출전했으나 끝내 메달 획득에 실패한 '비운의 빙속(氷速) 스타' 이규혁 선수의 "안 되는 것을 도전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는 말은 안타까웠다.

방송에서는 코미디언 박성광이 KBS 개그콘서트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절규하듯 내뱉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학력위조 논란에 휩싸였던 가수 타블로씨는 MBC 스페셜 '타블로 스탠퍼드 가다'에 출연해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라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집단 마녀사냥'을 비판했다.

해외에서는 지구촌 전체에 영향을 준 큰 사건과 관련된 말이 많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만 원유유출 차단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4월말 백악관 회의에서 "빌어먹을 그 (유출) 구멍을 막아버려"라고 소리쳤고, 사고를 낸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의 토니 헤이워드 최고경영자(CEO)는 "이 일이 끝나기를 나보다 더 바라는 사람은 없다. 내 삶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8월 5일 광산 붕괴로 700m 지하 암흑 속에서 지낸 칠레 광부들은 22일 갱도를 뚫고 들어온 구조대의 드릴에 "우리 33명은 대피소에 무사히 있다"는 쪽지를 매달아 보내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