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복지 논의의 제철을 앞두고

입력
2010.12.24 12:12
0 0

1987년 민주화 이후, 더 정확하게는 98년 진보정권 출범 이후, 자유권의 신장과 함께 크게 달라진 것이 사회복지다. 중증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 대표적 예다.

15년 전 종합병원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목격한 한 노년 환자의 가족회의 장면은 좀체 잊을 수 없다. 수술비와 치료비를 합쳐 2,000만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려고 지혜를 모으더니 '성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눈물의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는 이런 모습은 많이 드물어졌다. 90년대 후반 이후 지난해 12월까지는 10%, 그 뒤로는 5%만 부담하면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결과다. 아직은 대상이 암 환자나 난치성 희귀질환자 등에 한정돼 있지만 머지 않아 심혈관계 질환으로까지 범위가 넓어진다.

최하위 계층을 위한 공공부조가 튼실해졌고, 주거 지원도 나름대로 활발하다. 한국사회가 적어도 춥고, 배 곯고, 아파서 겪어야 하는 인간 삶의 해묵은 고통에서는 상당히 벗어났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런 변화를 안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밖에서 지내다가 오랜만에 들른 해외 동포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그들의 얘기에 비로소 따져보면 기초적 복지 틀이 갖춰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초적 틀은 갖춰졌다

물론 아직도 춥고 그늘진 곳이 있다. 출퇴근 길 지하철 역에서 만나는 노숙자들의 모습은 늘 같고, TV에는 도움을 호소하는 사연이 줄을 잇는다. 기본 틀은 갖춰졌지만, 실제 운용에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벌이는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 논쟁도 현행 복지 틀의 운용 효율성을 끌어올릴 소프트웨어 논쟁과 다름없다. 정말 복지 혜택이 필요한 곳을 가려 재원을 투입하고 그 위의 계층에는 다른 혜택을 주자면 '선택적'이고, 정밀 선택에 필요한 비용을 포함한 재원으로 그 위의 계층에까지 혜택을 주어 빈틈을 메우겠다면 '보편적'이다.

이런 논쟁 구도 속에서 최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사회보장법 전면 개정 공청회를 통해 제시한 '생애 단계별' 복지구상은 '선택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차상위 계층을 비롯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는 보편적이고, 수혜자의 개별적 노력과 지원의 결합을 강조한 점은 선택적이다. 아직 구체적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제시한 기존 복지정책의 한계나 '한국형 복지'의 배경인 사회 변화에 대한 진단만으로도 한국사회의 복지 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정치권은 판에 박힌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표가 유력한 차기 주자라서, 구체적 정책 방향보다는 '복지 행보' 자체의 정치적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4대강 예산 등에 대한 비난만 제외하면 야당은 여당 내 친이계와 똑 같이 구체적 재원확보 방안의 결여 등을 지적하기에 바빴다.

실행 방법론 고민하라

이런 반응은 애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박 전 대표가 다음 대선의 핵심 쟁점을 선점했다는 인상만 키웠다. 그 동안 다음 대선의 쟁점에 궁금증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성장잠재력과 경기 회복', 그 전에는 '기득권에 대한 심판'이 유권자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이른바'2012년 위기설'이 현실화하지만 않는다면, 현 정부의 '성장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 다음 대선의 중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심각한 양극화와 신빈곤층 문제는 소득 재분배와 복지 정책이 논쟁의 축이 되리라는 전망을 더욱 짙게 한다.

박 전 대표가 출발이 빨랐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이 중요한 만큼 다른 예비 주자들도 기회는 넉넉하다. 다만 '성장이냐 복지냐', '감세냐 증세냐' 식의 껍데기 논쟁만은 피하길 권한다. 전달 경로만 늘리면 복지도 얼마든지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고, 어차피 최종 부담은 부유층이 지니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