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안돼요. 만지지 마세요"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늘푸름복지관 3층 강당은 발달장애인 80여명의 힘찬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이들을 이끈 것은 무대 앞에서 온 팔을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 키 약 80㎝의 인형들. 빨강, 파랑, 녹색 머리의 어린이 인형들은 자신들의 몸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청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신의 몸을 함부로 만지게 해서는 안 되요."
이날 늘푸름사회복지관에서는 예비 사회적기업인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의 주최로 '성폭력예방 인형극'이 열렸다. 장애인끼리의 성문제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과 장애인간에도 빈번히 발생하는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을 위해 지체ㆍ지적 장애인 5명과 비장애인 1명이 '멋진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지난 8개월 동안 연습했다. '멋진 친구들'의 인형극 담당인 오미현씨는 "발달 장애를 가진 분들이 똑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성폭력 예방에 대해 얘기한다는 취지로 마련한 공연"이라며 "우리 극단의 첫 공연이었지만 정말 멋지게 해냈다"고 자평했다.
공연에는 비장애인도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백지승(33ㆍ추계예술대 대학원)씨는 "올해 5월 인터넷에서 인형극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며 "앞으로 장애 관련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이번 공연이 장애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은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대본 이해를 위한 독서 교육과 자신감을 끌어내기 위한 미술치료 등 심리치료도 병행해야 했다. 오씨는 "발달 장애인 가운데에는 일상생활에서 상처를 가진 이들이 많다"며 "이들은 공연을 통해 자신의 장애를 함께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중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약 30분간의 공연이 끝난 후 사회자가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대답해볼 사람?"이라는 말을 외치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정모(24ㆍ지체장애)씨가 "'싫어요, 하지 마세요, 도와주세요'라고 해야 해요"라고 크게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와~"라는 함성과 함께 "맞아 맞아"라는 맞장구가 뒤따랐다.
어린이 인형을 다룬 정승환(23ㆍ지체장애)씨는 "참고 견디며 연습을 열심히 했다"며 "멋진 친구들이랑 함께 해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모(42ㆍ지체장애)씨는 "공연 때문에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해서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는 이날 공연 성공에 고무돼 '성폭력예방'이란 주제에서부터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이해'까지 포괄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로 했다. 이윤수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 이사장은 "성폭력이란 주제도 상황 별로 연극을 만들어 그들이 잘 대처할 수 있게 끔 할 생각"이라며 "오늘 공연을 멋지게 끝낸 '멋진 친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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