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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 10년 2000~2010 한국 문화] (2) 황석영에서 박민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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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 10년 2000~2010 한국 문화] (2) 황석영에서 박민규로

입력
2010.12.2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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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황석영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하권 308~309쪽, 창작과비평사, 2000년 5월 발행)

'밥 볶는 얘길 좀 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입니까? 인간이 좀 / 호올스 / 하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왜 저런 게 나타나 기분을 복잡하게 하는지, 또 하필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뭔지… 좋잖아? 라고 부장이 물었다. / 이데올로기도 없는데 / 저런 거라도 있으니 말이야.'(박민규 단편소설 '아스피린', 소설집 <더블> Side B 156~157쪽. 창비, 2010년 11월 발행)

가둠과 닫음 - 보다 좁은 곳으로의 여행

2000년대 들어 일어난 한국 문학의 변화 가운데 가장 먼저, 또 많이 얘기된 것은 개인화 경향이다. 자폐화라고 규정하는 이도 있다. 문장과 플롯을 벽돌 삼아 무너지지 않을 집을 지어보자고 덤볐던 1980년대가 지나고, 그 환멸과 허무를 아픈 문장과 플롯으로 토했던 1990년대가 저물자, 2000년대의 문장과 플롯은 이제 타인에게 말 걸기를 멈춘 듯 보인다. 2010년 한국 문학의 풍경화는 오도카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독백의 자화상에 가깝다.

내면으로의 몰입 현상은 주제를 넘어 형식에서도 감지된다. 소설은 1인칭 소설과 3인칭 소설로 나뉜다, 는 이분법적 사고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는 것. 3인칭의 바깥쪽이 아니라 1인칭의 안쪽으로의 균열이다. 예컨대 박민규의 <핑퐁> (2006). '으응. 원래 그래, 라고 둘러댔는데, 찍 침을 뱉으며 치수가 속삭였다. 너, 나 죽이고 싶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후로 놈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1인칭에서 한 층 더 깊숙이 들어간, 발화조차 되지 않은 머릿속 독백체의 문체가 보편화돼가고 있다.

SF적 순수문학 - '본격'과 '장르'의 상호침투

판타지, 추리, 호러, 무협, SF 등 코드화된 문학과 이른바 순수문학 사이의 경계가 지난 10년 새 눈에 띄게 흐릿해졌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탓(혹은 덕)에, 출판 시장에서 문학 팬과 B급 문화 마니아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계급적 담론과 철학적 사유를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엮던 계간지들도 2000년대 들어선 '2012년, 은하 스위트'(이명랑, 작가세계 2007년 가을호), '독서형무소'(박상우. 세계의문학 2008년 봄호) 같은 작품에 아낌없이 자리를 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문학의 저속화 내지 상업화로 치부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 또한 지난 10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다. 만화와 인터넷과 모바일 메시지 상의 화법, 영상 매체에서 전이된 환상적 이미지 포착, 현실의 모순으로부터 순간 점프해버리는 판타지의 기법이 문학이 맞고 있는 위기의 한 해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정미경, 정이현, 이홍 등이 선보이고 있는 '강남스러운' 문학도, 10여년 전이었으면 프롤레타리아의 돌팔매를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쿠엘켈켁퀘엘' - 언어 실험실, 문학

위 소제목의 켈켁은 김태용의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2007)의 표제작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에선 켈켁이 훨씬 더 길게 이어지는데, 하드코어 록음악의 악보 같기도 하고 칸딘스키의 그림을 활자로 펴서 늘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 언어를 질료 삼아 다양한 실험을 감행하는 젊은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유주, 편혜영 등 서사를 증발시키고 독자를 당황케 하는 충격적 이미지만으로 소설을 직조하는 작가들이 늘었다.

언어 실험은 시에서 더 두드러진다. 미래파, 혹은 난해시라는 말이 2000년대 들어 시를 비평하는 데 기초적 용어로 쓰이고 있다. 황병승 김경인 김경주 김행숙 등등, 언어에서 서정성을 길어내기보다 언어의 내장을 파헤쳐보려는 젊은 시인들의 시작이 활발하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씨는 문학과사회 2010년 여름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에 기대 "무서운 아해들이 한국 현대시단을 질주하고 있다. 진정 '무서워하는 아해'는 이상이 분명했으리라고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유상호기자

■ 대세로 자리잡은 인터넷 소설 연재

바야흐로 문학의 소비 행위는 '넘긴다'에서 '내린다'의 영역으로 전이 중이다. 적잖은 사람들에게 종이 책장을 만져 본 감촉은 아렴풋하고, 스크롤바를 문지르는 느낌은 또렷하다. 10여년전까지 인터넷 소설 연재는 일부 장르문학 작가에 국한된, 굳이 작품성을 따지지 않는 영역의 창작 행위였다. 하지만 2008년 박범신의 <촐라체> 가 네이버에서 연재돼 인기를 얻은 뒤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최근 들어 온라인에 먼저 연재된 뒤 책으로 묶여 나온 유명 작가의 작품만 대략 나열해보자. 공지영 <도가니>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김훈 <공무도하> , 박범신 <은교> , 신경숙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정이현 <너는 모른다> , 정도상 <낙타> ….

주류 작가와 출판사들이 앞장서 온라인 연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마케팅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아간 흐름에서 문학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면을 얻기 힘들었던 신인급 작가와 선뜻 이들의 책을 내지 못했던 출판사의 이해도 웹(web)에서 맞아떨어졌다. 꼭 유통 방식의 변화에서만 이유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 소설의 침체와 부활이 각각 이슈가 되는 전환점에 온라인 연재 붐의 시작이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문장'을 비롯해 뿔, 이룸 등 출판사가 운영하는 웹진, 문학동네 등의 인터넷 카페에 수십명의 작가들이 현재 작품을 연재 중이다. 본격 문학의 마지막 성채로 여겨지던 계간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도 2010년 초 각각 웹진과 블로그 운영을 시작했다. 소설 시장이 장편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신문 연재가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해, 온라인 연재가 보편적인 소설 발표 수단으로 자리잡는 것으로 풀이된다.

소설의 대중성 확보와 젊은 작가들의 창작 기회 확대라는 차원에서 온라인 연재는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온라인 상의 1회 연재 분량이 짧다보니 서사의 단위가 짧아지고, 스토리를 촘촘하게 짜기보다 단순히 에피소드를 나열한 작품이 많아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인터넷 연재에서는 독해하는 데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한 인과론적 구성과 특히 심리, 풍경 묘사 등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씨는 "소설의 온라인화로 인해 작가와 작품이 출판사의 상품, 또는 마케팅 수단화되는 경향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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