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도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오석준)는 24일 1926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가 14명에게 실형을 선고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김세완(1973년 사망)의 후손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는 지난 10월 같은 법원 행정3부(부장 김종필)가 1920년대에 독립운동가 60여명에게 유죄 선고를 한 유영(1950년 사망) 판사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보지 않은 판결과 엇갈린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당시 김 판사가 독립운동가를 상대로 심리한 8건의 판결문 전문을 실은 뒤 “김 판사가 이들에게 실형 선고를 한 행위는 민족에 대한 탄압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고, 그 적극성 또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법은 우리 헌법상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고 ▦정당성을 상실한 법에 따른 사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은 실질적으로 살해, 감금과 다를 바 없으며 ▦그 결과 독립운동가 본인뿐 아니라 독립운동 자체도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김 판사의 행위는 우리 민족 구성원에 대한 감금ㆍ고문ㆍ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의 후손은 “당시 법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판사는 형사재판에서 상당한 재량권이 있고, 김 판사는 1920년부터 광복 직전까지 항일독립운동 관련 사건의 처리 건수를 기준으로 볼 때 상위 10%에 해당될 정도로 관련 재판에 많이 관여했다”며 이를 배척했다.
김 판사는 1929~36년 독립군 자금 모집 활동을 하며 총독 정치가 전복될 것이라는 말을 유포한 사건 등에서 독립운동가 14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는 조선총독부 소속 판사로 봉직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정부로부터 훈장(훈6등)을 받기도 했다. 김 판사가 유죄를 선고한 피고인 가운데 3명은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결정됐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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