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2010년 경인년은 역사적으로 기념하고 상기해야 할 일이 참 많았던 해다. 경술국치 100년, 6ㆍ25 60년, 4ㆍ19 50년, 5ㆍ18 30년, 이 네 가지만 꼽아 봐도 역사의 격동이 숨가쁘다. 한국인들은 어찌 이다지도 험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아야 했을까. 게다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첫 10년을 마감하는 해라는 점에서 인류문명과 문화의 큰 변화도 새겨 보게 된다.
더 심해진 악의와 진영논리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문명과 문화에 관한 관심보다 국가안보와 국민 생존의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한 해였다.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사건,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은 잊고 있었거나 경시하고 살아온 북의 위협을 생생하게 다시 알려주었다. 이제 삶의 모든 부문에서 남북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토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리더십과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외형상 많은 발전을 했고, 선진국으로 이행하는 모양새는 계속됐다. 정부가 특히 자랑한 것은 G20정상회의였고, 경제발전과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서도 우리나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성가를 올리는 일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우리 시민사회의 발전과 성숙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다. 성숙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천박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다른 사람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편견이나 고정관념, 편을 갈라 싸우는 진영논리, 그리고 악의. 이런 것들의 폐해와 부작용이 더 심해졌다.
부정적인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타블로 사건을 들고 싶다. 유명해진 사람의 학력과 경력에 대해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의 소명과 객관적인 자료 제시 및 공권력의 수사결과도 인정하지 않고 의혹에 의혹을 덧붙여 쌓아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불건전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알게 해 주었다.
IT산업의 발전은 우리나라를 세계적 정보화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이런 부정적 의식과 일들도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유포하고 전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터넷공간에서 흔히 벌어지는 이른바'신상 털기'는 개인의 비밀과 사생활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그 위협과 심각성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회 각계의 고위급 인사 때마다 들려오는 추한 뒷이야기, 예산국회의 날치기파동도 국민을 실망케 했다.
무엇이든 빨리 전파하고 해결하는 속도 만능의 사회에서는 깊은 사려와 분별이 자리잡기 어렵다. 관용과 상호 이해의 틀도 정착될 수 없다. 올해 한국인들을 즐겁게 해 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 준 인물들은 누구누구인가. 피겨의 김연아, 부활한 박태환과 장미란, 나어린 여자축구 선수들, 그리고 박칼린과 허각. 이런 이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스포츠 연예등 대중문화계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하루 아침에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이 모르는 시간에 그들은 치열한 노력을 해왔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었다.
국민을 안심시킨 일로는 말레이 곰 '꼬마'의 탈출사건을 들 수 있다. 탈출 9일 만에 서울대공원으로 되돌아온 곰은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 곰이 요즘 아무데나 나타나는 멧돼지처럼 무참하게 죽게 되지 않기를, 사람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새해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그 곰은 추격해서 포획하려다가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안전하게 잡을 수 있었다. 곰의 행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사려와 분별의 결과였다. 곰을 무사히 되돌아오게 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량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2011년은 좀더 성숙되고 사려와 분별을 갖춘 사회, 남을 배려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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