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께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승진훈련장. 해발 550m에서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관람석 앞쪽 자주대공포 비호에 올라탄 군인들의 눈은 흔들림 없이 전방을 응시했다. 청명한 하늘에 시야는 뻥 뚫렸다. 육안으로도 약 3㎞ 거리의 표적들이 정확하게 보였다. 아라비아 숫자와 가나다 등의 표적이 놓여진 훈련장은 거대한 보드게임판을 연상케했다.
화기별 위력사격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비호 2대가 동시에 섬광을 뿜어댔다. "타타타타!"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30㎜ 기관포탄은 2㎞ 남짓 떨어진 8번 표적에 일제히 작렬했다. 분당 600발을 쏠 수 있는 비호 주변에는 탄피가 비오듯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이어 훈련장 안으로 진입한 K-1 전차 5대가 기동을 하며 목표물을 향해 포탄을 날렸다. 약 6.5㎞ 떨어진 이동면 도평리에서 K-9자주포가 10초전 발사한 포탄들도 훈련장 내 표적에 잇따라 명중했다. K-9자주포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우리군이 대응했던 무기다.
오른쪽 산등성이에서 발사된 130㎜ 다연장 로켓 구룡은 훈련장을 가로로 가로질러 반대편 표적에 꽂혔다. 로켓의 화염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창공을 수놓자 관람석에서는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잠시 뒤 상공에서는 F-15K 2대가 지상의 표적을 향해 공대지미사일 8발을 떨어뜨렸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압도적인 포성에 관람객들은 우레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포천 영중면에서 훈련을 보러 온 주민 양근종(70)씨는 "열살 때 이후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데 우리 군사력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이날 군은 화기별 사격에 이어 공지합동훈련을 진행하면서 승진훈련장에 포탄을 쏟아 부었다. 훈련에는 F-15K 등 전투기를 비롯해 육군과 공군의 장비 105대와 8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됐다. 겨울에 치른 공지합동훈련 중 최대 규모다.
이번 훈련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경고와 함께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측면이 적지 않다. 승진훈련장에서 훈련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승진훈련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 공지합동훈련장이기도 하지만 8월부터 안보관광지로 꾸며져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이다. 국민이나 언론에 군의 대응태세를 자연스럽게 과시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다.
한편 오후 2시 예정이었던 이날 훈련은 준비 문제 등으로 40분이나 지연됐다. 이때문에 영하의 날씨 속에 관람객들은 외부 관람석에서 군이 나눠준 담요를 덮고 덜덜 떨어야 했다.
포천=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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