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별 생각 없이 부르던 노래에 "나아가자 씩씩하게 대한소년아"로 시작해 "무찌르고 말 테야 중공오랑캐"로 끝나는 게 있었다. 사내아이뿐 아니라, 계집아이들의 고무줄놀이에서도 불렸다. 적개심 가득한 가사로 보아 한국전쟁 중이나 직후에 나온 노래같다. 이런 대(對)중국 적대감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깨끗이 사라졌다. 아니, 이미 80년대 초 민간교류가 시작되면서부터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우방국처럼 인식됐다. 그런데 최근 일반인 사이의 반중감정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음식점으로 정한 송년회 장소를 바꾸자는 제안이 올 정도다.
■ 올 들어 천안함 폭침, 북한핵, 연평도 포격도발 등 일련의 주요 남북문제에서 중국이 일관되게 보인 북한 일방 편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어선충돌 침몰사고와 관련, 중국이 보인 적반하장식 태도가 기름을 부었다. 원래 국가간 행위의 본질이 안보와 경제, 쉽게 말래 '힘과 돈'의 추구임을 이해한다면 영 이해 못할 건 아니다. 더욱이 미국, 중국 같은 슈퍼파워국가에겐 자신들의 입장만을 우선시하는 선민의식, 우월주의가 얹혀진다. 스스로를 세계와 동일시하는 이 인식은 자주 독선과 강요, 무시의 행태로 나타나 국제관계를 어지럽힌다.
■ 그러나 두 국가엔 차이가 있다. 미국이 내세우는 세계관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명백히 가치지향적이다. 물론 이를 무리하게 이식, 강요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해당국의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압살하는 모순적 행태를 자주 보여왔다. 반면 중국의 세계관은 여전히 전통적 중화주의 틀에 머물러있다. 중국을 정점에 놓고 주변국들을 관리하는 위계질서가 그것이다. 실제 중국역사에서 오랜 기간 주변국과 대등하게 평화 공존한 사례는 별로 없다. 중국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룬 유가(儒家)의 인(仁) 예(禮) 같은 것도 사실 위계를 전제한 개념이다.
■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 이상 굴종과 빈곤의 시대를 지나 대국으로 굴기(崛起)했다. 지난 세월에 너무 한이 컸던 탓일까, 최근 유엔 등 국제외교무대에서, 또 한반도문제와 센가쿠사건 등 주변국 관계에서 중국이 잇따라 보여주는 막무가내 식 행태는 오랫동안 설움 받다 갑자기 힘과 재물을 얻은 졸부(猝富)의 횡포를 연상시킨다. 국제관계도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법이다. 중국의 이런 정서를 이해하면 매번 같이 발끈할 필요도 없다. 의연하고 어른답게, 늘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것이 그들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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