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아내가 경찰에 끌려간다. 체포된 아내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도 영문을 모른다. 부부는 죄를 뒤집어 썼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목격자가 나타나고, 증거가 하나 둘 제시된다. 아내는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고 남편은 무죄 판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법원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은 아내를 감옥에 둔 채 남편은 기약 없는 재회를 기다리며 유치원생 아들과 살아가야만 하다. 당신이 남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쓰리 데이즈’의 존(러셀 크로)은 다른 남편들이라면 상상조차 쉽지 않을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다. 아내 라라(엘리자베스 뱅크스)는 죄가 없지만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니 감옥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는 신념에 아내의 탈옥을 시도한다. 그는 전설적인 탈옥의 대가 데이먼(리암 니슨)을 찾아 비법을 전수 받고, 실전에 필요한 잔기술을 하나씩 익혀나간다. 만능열쇠를 만드는 법, 차량을 탈취하는 법 등의 범죄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얻고 구슬땀을 흘리며 기술을 연마한다. 위조 여권 등을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 집을 내놓기까지 한다. 대학교수로서 범죄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는 그에겐 지난하기만 한 일들이다.
미국의 인기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다. ‘프리즌 브레이크’가 치밀한 탈옥과정을 묘사하는 반면 ‘쓰리 데이즈’의 탈옥 방법은 좀 투박하다. 두뇌 유희를 권하는 영화라기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스릴러에 가깝다.
존이 아내의 탈옥을 위해 여러 시행 착오를 겪는 과정이 영화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한 서스펜스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좀 지칠 만도 하다. 상업영화로서의 힘은 후반부부터 발휘된다. 아내의 이감 사흘 전 존이 아내를 감옥에서 빼내 35분 안에 도시를 벗어나는 실현 불가능한 도전에 나서면서 영화는 급가속 페달을 밟는다.
감독은 폴 해기스. 2006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를 연출했고, ‘밀리언달러 베이비’와 ‘아버지의 깃발’ 시나리오를 쓴 할리우드의 장인이다. 프랑스 영화 ‘애니싱 포 허’(2008)를 밑그림 삼은 해기스의 치밀한 구성력이 두드러진다. 존이 기지를 발휘해 경찰들을 따돌리고 조금씩 목표점에 다가서는 과정에선 손바닥에 땀이 돋는다.
미국 사회에 대한 해기스의 시선 변화가 읽힌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흥미롭다. ‘크래쉬’로 다인종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면서도 휴머니티라는 미국의 희망을 엷게 내비쳤던 그는 이라크전을 다룬 ‘엘라의 계곡’을 통해 미국사회가 회복하기 힘든 중병에 걸렸다고 경고했다. ‘쓰리 데이즈’에서 해기스는 미국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땅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존이 정한 최종 목적지와 마지막 장면은 해기스의 미국에 대한 지극히 냉소적인 관점을 반영한다.
아내의 죄를 인정하고 자기 삶을 찾으라는 주변의 권고에 대해 존은 대답한다. “합리적으로만 (세상을)보면 영혼이 파괴된다.” 이성이란 이름으로 갖은 단속과 단호한 법 집행이 우선시되는 미국 사회의 병폐에 대한 감독의 야유가 아닐까. 22일,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