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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NLL 함부로 시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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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NLL 함부로 시비 말라

입력
2010.12.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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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들이 지키고 있지만, 서해5도를 우리 땅으로 만든 것도 해병대다. 중부전선 전투가 치열하던 1951년 4월 해병대 독립41중대원들이 한강 하구 교동도를 기습 점령한 데 이어 해안을 따라 백령도까지 단숨에 진출했다. 다음달에는 전격 북상, 평양을 지척에 둔 대동강 하구의 석도와 초도까지 진출했다. 북한지역 서해 주요 섬들을 모조리 장악한 것이다.

같은 시기 42ㆍ43중대는 동부전선을 우회, 원산 앞 6개 섬과 함남북 도경계 지점의 양도까지 점령함으로써 역시 북한 동해안 섬들을 몽땅 수중에 넣었다. 경악한 북한군은 수시로 사단급 병력까지 동원, 죽을 힘을 다했으나 종전까지 이 섬들은 우리 땅으로 남았다.

우리측이 휴전 당시 양보한 선

익히 아는 해병용사들의 투혼을 또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그어진 상황을 정확히 되짚어보자는 뜻이다. 휴전협정의 원칙은 그 시점의 점령지와 그 인접수역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마땅히 북한 동ㆍ서해안의 섬 모두 우리 관할지역이 됐어야 했다. 그러나 유엔사가 육상분계선 북방의 섬들을 포기, 해병대원들을 철수시켰다.

그리곤 서해5도와 황해도 해안의 중간선을 따라 그은 것이 NLL이다. 이 분야 연구에 정통한 류병운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NLL은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아니라, 종전 압박에 몰려 도리어 '일방적으로 양보한 선'이다. 이름도 그래서 선 너머 우리측 군사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북방한계선이다. 해ㆍ공군력이 거의 전무해 해안 방어능력이 없던 북한으로선 고맙기 그지없는 조치였던 것이다.

북한의 NLL 무효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NLL이 휴전협정에 명시되지 않았고, 합의도 없었다는 논거를 든다. 그러나 협정의 '육지와 인접한 수역'에는 취지상 서해5도와 인접수역이 당연히 포함되며, 유엔사의 대폭 양보로 해상분계선에 대해선 협상 여지도 없었다는 것이 정황상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종전 직후 북한 섬들에서 해병대를 철수시키면서 NLL을 제시했을 때 북측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90년대까지 북한이 여러 차례 NLL을 인정했다는 등의 얘기를 길게 반복할 건 없다. 분명한 건 서해5도 수역은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해왔고, 우리국민 수만의 생업 터전이자, 매년 200만 이상이 오가는 우리의 영토ㆍ영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NLL 설정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도외시한 채 현 시각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전혀 가당치 않다.

무엇보다 NLL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선이다. 꽃게어장 등의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이른바 '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적용할 경우 우리 인구와 경제력의 절반이 집중된 서울 수도권 전역이 육ㆍ해ㆍ공 모든 방향에서 북한의 직접타격 및 상륙 가능거리에 놓인다. 연평도 포격만으로도 불안해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차원이 다른 공포상황이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이 기능을 잃는 정도를 넘어, 북한에 멱살을 잡힌 채 매사 그들의 뜻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종속적 상황으로 전락하게 된다.

논쟁대상이 아닌 생존의 문제

서해5도는 필연적으로 고사함으로써 북한 수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도대체 적 함정들의 감시 속에 폭 3km 남짓한 좁은 수로로만 다닐 수 있는 고립도서를 방어할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전임 대통령의 서해평화수역 구상은 완벽한 남북간 신뢰관계를 전제한 이상론이어서 북한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NLL 유지 외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을 계기로 NLL 재검토를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다. NLL은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지키는, 그것도 박막(薄膜)과도 같은 최소한의 방어장치다. 어떤 논리도 이 엄연한 현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대북문제의 방향과 방법을 놓고는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다. 지금의 경직된 대북정책보다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논쟁해선 안될 것이 있다. 한국전 이래 우리 젊은이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끝내 지켜온 NLL이 바로 그것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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