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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까울수록 더욱 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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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까울수록 더욱 엄해야

입력
2010.12.2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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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 남구만(1629-1711)은 17세기에 활동한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시조로 더 유명하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한 이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배와 낙향의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오랜 관료 생활을 통해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지나친 명분보다 실용을 강조한 정치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실용은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시종일관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면서도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왕에게 올린 수많은 상소문에서 어떠한 예외적인 특권도 인정하지 않는 공평한 법의 집행과 왕의 측근들을 엄하게 단속할 것을 자주 당부하였다.

1684년 4월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의 장례식에 이은 산릉 조성의 대역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에 숙종은 산릉 공사를 감독한 신하들에게 상전(賞典)을 내리고 왕후를 위해 애책문, 애도의 글을 지어 올린 우의정 남구만에게는 말 한 필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이에 남구만은 상전을 거두어 달라고 왕에게 간청했다.

'신에게 안장이 딸린 말 한 필을 지급하라고 하셨으니, 신은 지극히 놀라고 의혹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종전에 애책문을 지어 올린 사람에게 혹 품계를 높여주라는 명이 있었고 품계가 너무 높아서 더할 수 없는 경우라야 말을 하사하는 명이 있었지만, 안장을 갖춘 말을 내리신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상은 신이 근신(近臣)의 지위에 있기 때문으로 너무도 외람됩니다. 옛날 현명한 군주는 벌은 반드시 가까운 자에게 먼저 내리고 상은 반드시 먼 자에게 먼저 내렸으니, 이렇게 한 뒤에라야 공정한 도를 넓혀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직책이 귀하고 가까운 사람이라 하여 지나치게 은전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또 신이 비록 변변찮으나 백관에게 솔선을 보이는 자리에 있으니, 이제 신 자신이 지나친 상을 태연히 받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조정은 조그만 공로에도 은혜가 지나치게 후하여 너무나 많은 상을 주는데 비해, 일을 그르친 경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며 형벌이 너무 가벼워서 다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잘한 일은 오랜 동안 칭찬하고 잘못한 일은 짧고 간단히 책망하는 것이 성인의 아름다운 가르침이지만 모든 일은 지나치면 병폐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공로가 있더라도 상을 신중히 내려야 하며,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신은 매번 이 때문에 가슴 속에 답답함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임금께서는 신의 간곡한 청원을 굽어 살피시어 안장을 갖춘 말 한 필을 사급하라는 명을 속히 거두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왕의 친인척과 근신들에게 더욱 엄격하기를 바라는 남구만의 요청은 지금도 너무나 절실하다. 연말 중요한 국정을 논의해야 하는 국회가 파행을 면치 못한 데 대해 국민으로서 좌절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뒤이어 가까운 이와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후하게 책정된 예산안을 보니 더욱 마음이 쓰리다. 정말이지 오늘날 대한민국은 몇 백 년 전 조선과 같은 왕조국가가 아니다.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요, 너무도 식상하지만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라의 품격은 전혀 나아지질 못하는지, 도대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부끄럽지 않은 지 묻고 싶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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