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기브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방북허용 의사표시 등에 대해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서도 "행동 변화의 의지를 보여줄 때"라고 못을 박았다.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요구해온 '비핵화 의무의 진정성'이라는 단서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국무부도 마찬가지다.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사찰단을 복귀시킬 의향이 있다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말할 게 아니라 아마노 유키야(天野之) IAEA 사무총장에게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아마노 총장의 전화번호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조롱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이 북한의 유화제스처에 초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구두 약속에 불과하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리처드슨 주지사를 통해 했기 때문이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민주당 인사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워싱턴 정가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월 상무장관에 지명된 뒤 특정업체와의 유착혐의가 터져 청문회를 하기도 전 낙마한 것이 결정적 계기다. 상무장관 지명 때도 본인은 국무장관을 요구해 오바마 대통령을 당혹케 했다는 설도 있다. 8번이나 북한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친북성향을 드러냈고 정치적 과시욕이 강하다는 점은 그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에 부정적 딱지다. 기브스 대변인이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 행정부가 리처드슨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리처드슨에 의해 부풀려졌을 수는 있어도 어찌됐든 북한의 제안이라고 할만한 것이 나왔다. 크롤리 차관보가 20일 "사찰단 입국을 허용한다면 긍정적인 조치"라고 한 것도 이런 뜻에서다. 이 후 미 행정부는 리처드슨의 스타일까지 감안해 이번 제안이 북한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는지를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슨이 최소한의 전달자로서의 가치는 있다는 얘기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리처드슨의 방북을 역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이 보인 일종의 유화제스처를 북한을 압박하는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사찰단 방북 허용과 미사용 핵연료봉 해외반출 약속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 더 근본적인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벌어질 협상 국면에서 이번 북한의 제안을 오히려 북한의 부담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리처드슨의 기여라면 기여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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