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다. 유치원 시절부터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한 해 동안 자신이 한 착한 일(식사 잘 한 것, 책 많이 읽은 것 등)을 열거하며 "ΟΟΟ을 선물로 주세요"하고 기도한 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녀석이 올 연말에는 좀 수상쩍어 보였다. 잠자리 기도도 하는 둥 마는 둥이고,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산타클로스 대신 반드시 선물을 해야 할 입장인 내가 더 애가 탔다. 슬쩍 몇 번 속마음을 떠봤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특별히 받고 싶은 선물이 없다는 거다.
■ 한 유통업체가 '어린이들이 원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조사했더니 닌텐도 게임기가 1, 2위에 올랐다. 3년째 같은 순위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닌텐도를 모른다. 게임하기, 스포츠 경기 시청을 제외한 TV 보기를 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웬만한 학용품, 책, 좋아하는 스포츠용품, 장난감 따위는 다 갖고 있다. 그러니 초등 2학년 수준에서 더 갖고 싶은 선물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안에 닌텐도를 사달라고 하면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상업주의가 쳐놓은 그물에 포획된 아들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할 것이다.
■ 크리스마스의 주객이 전도된 것은 오래 전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힐난처럼 "크리스마스는 자본주의 경제의 하나의 주된 도매상"이 되고 말았다."단순히 즐거운 한 계절이 꾸준한 선전 때문에 장기적인 예배 축제로 변해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이들과 선물을 강제로 교환하고, 그 결과 상인들이나 제조업자들만 큰 치부를 하게 됐다." 그의 말대로 기업은 순진한 어린이나 유치한 어른들의 물욕과 허영심을 끊임없이 부채질하고, 사람들은 유래나 의미도 모른 채 선물 주고받기에 더 집착해 가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이들 도덕 교육에 활용하는 부모들의 심리에도 상품주의의 교묘함은 엿보인다."착한 일 해야 선물 받지"하는 부모 말에 아이의 고민은 깊어지고, 부모들은 얼마 동안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 데 만족한다. 그러나 자승자박이다. 닌텐도를 받은 아이들의 물욕이 점점 커질수록 부모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스트레스는 심해질 것이다. 차라리 어린 자녀들에게 산타클로스는 허구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모가 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게 어떨까. 그러면 아이들을 상업주의의 폐해로부터 조금이나마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나부터 해볼 일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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