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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미국은 웃는다

입력
2010.12.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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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국이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지 120여 년.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오랜 세월 한반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일관된 시각은 국익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였다. 자유와 민주,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임한 것도 그러한 가치가 국익 극대화와 직결된 때문이었다. 필리핀은 우리가 갖는 대신 일본의 조선 침략을 묵인한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그런 시각에서 보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당시 국제정세에서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곳이었다.

국익이 최우선의 잣대

하지만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 남한에 수만여 명의 우리 군인들을 진주시킬 만큼 한반도의 가치는 높아졌다.

한국전쟁으로 중국과 소련, 북한의 위험성이 드러나면서 일본, 나아가 동남아시아까지 적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 결국 우리는 58년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키로 결심했는데, 이때만 해도 이 결정이 북한과 반세기 이상 숨가쁘게 이어지는 핵 줄다리기의 서막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협을 느낀 북한은 중국, 소련의 도움을 받아 핵폭탄 개발에 나섰고, 남한의 박정희 정권도 이에 맞서 핵무기 기술 도입을 시도했다. 자칫하면 남북한 모두 핵무기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마지못해 91년 먼저 남한에서 핵무기를 먼저 철수한 데 이어 그 해 남북 간에 한반도 비핵화 협정을 맺도록 종용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우리가 오판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몰래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영변에 건설된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해 핵폭탄을 만들었으며, 파키스탄에서 우라늄 농축기술을 수입해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으로는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개발해 동해에 발사 실험까지 했다.

이런 것도 모르고 클린턴 행정부 때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는 내용의 제네바협정을 맺었으니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그 조그만 나라에 놀아난 것이 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는 영변 폭격까지 검토했으나 제2의 한국전과 같이 서울 파괴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포기하고 말았다.

포용정책도 써봤고, '악의 축'으로 분류해 압도적인 힘을 통한 압박정책도 펴봤지만 북한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는 북한 스스로 붕괴하기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대북전략이라고 할 만한 게 마땅히 없다.

그나마 한국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의 영향인지-물론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별다른 위기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노골적인 적대정책에 반감을 품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등을 자행해 한반도에 긴장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지금의 상황이 썩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먼저 한국과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북한의 위협이 커질수록 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미FTA 재협상에서 우리의 요구가 상당히 관철될 수 있었던 것도 끈끈해진 한미동맹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토야마 정권 때 우리의 영향력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자 했던 일본도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공포를 깨닫고 다시 다가오고 있다.

한반도 외교전 승자는

중국은 남북 갈등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몸값이 높아진 듯 보이지만 실제 대북 영향력은 거의 발휘하지 못하는 빛 좋은 개살구 꼴이다. 우리 항공모함이 자기네 코 앞까지 진출해도 속수무책이지 않은가. 북한도 얻은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관심을 끌려고 갖은 협박과 공갈을 놓고 있지만 그럴수록 고립 장기화에 따른 경제붕괴로 파멸할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이렇게 주판알을 튕겨보면 남북한이 전면전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한반도에서 긴장의 상시화가 우리에게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긴장국면에서 진정한 승자는 우리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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