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단 복귀 허용 등 유화 제스처에 대한 미 행정부의 반응은 '차분' 또는 '두고 보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표면적 평가는 유보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진의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20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것을 수 년간 지켜봐 왔다"며 "북한의 말 보다는 행동에 따라 우리의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말만으로는 어떤 긍정적 화답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크롤리 차관보가 사찰단의 방북 허용을 IAEA에 직접 얘기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더욱이 북한이 정부간 공식 채널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에 지극히 부정적이다. 나중에 수 틀리면 다시 뒤집기 위해 애매한 위치에 있는 리처드슨 주지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가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을 수 차례 "개인자격"으로 평가절하한 것도 북한의 이런 전략을 의식한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이번에 이런 형태의 대화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 같은 대응에는 과거의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위기지수를 극도로 올려놓은 뒤 유화책을 펴는 북한의 전략에 넘어가 결과적으로 돈과 시간만 낭비한 아픈 경험이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금이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처럼 위중한 상황이지만, 대응은 부시 행정부처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 번 산 말을 다시 사지 않겠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때문에 행동 없는 어떤 제안도 미국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제안 자체도 미국의 구미를 당길 만한 게 없다. 북한은 사찰단 축출과 복귀허용을 반복해 왔고 미사용 연료봉의 해외반출도 '외화벌이를 위한 술수'일 수 있다고 본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