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 월출산은 해발 809㎙의 가장 높은 천왕봉을 비롯 구정봉, 사자봉 등으로 구성되고 기암절벽이 많아 우리나라 100대 산에 포함되는 명산이며 전북 내장산 등과 함께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히며 도립공원을 거쳐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월출산의 구정봉(九井峰) 서북쪽 암벽에 높이 8.6㎙의 앉은 자세 불상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이 바로 국보 제144호로 지정된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이다.
1971년 가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근무하고 있던 필자는 맹인재 문화재전문위원을 따라 전남지역의 문화재조사를 위해 전남도청 문화공보실을 찾아갔다. 임해림 문화재전문위원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임 위원이 미리 제보를 받은 월출산 마애불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월출산 아래 마을의 이장을 만났다.
우리에게는 처음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예부터 구정봉 근처의 암벽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이야 월출산을 오르는 코스가 많이 개발되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등산로는 없었고 나무꾼이 가끔 오르내리는 길 밖에 없었다. 때문에 자칫 길을 잃게 될 수도 있었다.
조사 당일 비교적 이른 오후에 마애불을 찾아 등산길에 올랐다. 숲을 헤치고 간신히 구정봉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불 앞에 도착했다. 마침 해가 서해바다로 빠져 들어가기 전의 일몰이 주변을 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마애불 조사보다 일몰의 광경에 잠시 넋을 빼앗겼다. 늦게 마애불 앞에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정밀조사는 뒤로하고 약식조사를 서둘러 마치고 하산해야 했다.
아무런 등산장비 없이 빈 몸에 카메라 1대와 야장만 들고 찾은 터였다. 얼마 있지 않아 어두워지기 시작해 하산을 서둘렀는데도 순식간에 주변이 암흑으로 변했다. 랜턴 하나 없이 더듬고 기다시피 해서 출발지인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바지가 찢어지고 돌부리에 부딪혀 곳곳에 멍이 들기도 했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 초기 작품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춘 여래상(如來像)이다. 몸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조각돼 언밸런스한 아름다움이 있고, 오른쪽 무릎 옆에 높이 86cm의 공양하는 작은 동자상(童子像)이 새겨져 있는 것이 가장 특징적이다. 이 마애불은 지금까지 호남지역에서 발견된 마애불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9㎙에 가까워 역시 호남 최대의 마애불이라 할 수 있다.
조사 이듬해인 1972년 3월 국보로 지정되어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최초로 마애불이 국보로 지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 후 1985년 근처의 절터에서 龍嵒寺(용암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편이 수습되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고려시대 이곳에 용암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마애불 역시 원래 용암사마애여래좌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