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금이 글도 배운 것이 없으니, 학문이 있어야 치정(治定)이 날 것이니 누가 가르칠 것인가? … 갖가지 생각이 끓으니 내 근력은 공연히 탈진하여 견딜 길이 없으니 이러한 괴이한 팔자가 고금천하에 없는 듯하네."
조선 순조의 비로 헌종과 철종 때 두 차례나 수렴청정을 했던 순원왕후 김씨(1789~1857)가 철종이 즉위한 직후인 1849년 6월 재종 동생 김흥근에게 보낸 편지다. 순원왕후는 친정인 안동 김씨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학문을 배우지 못한 강화도령 원범을 철종으로 옹립한 막후의 실력자로 알려져 있으나, 이 편지에서는 막상 철종이 즉위하자 근심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순원왕후의 한글 서찰을 현대어로 풀이한 <순원왕후의 한글편지> (푸른역사 발행)가 출간됐다. 이승희 상명대 국어교육학과 교수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순원왕후의 한글 서찰 57통을 현대어로 옮기고 해제를 붙였다. 순원왕후의>
수록된 편지들은 1841년부터 1856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수신인은 김흥근과 김흥근의 아들 김병덕 등이다.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 대소사와 관련해 축하나 위로를 전하는 편지가 대부분이지만 왕위 계승, 세자비 간택, 왕실 의례 등에 대한 정견(政見) 등 공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서찰도 적지않다. 주로 조정을 이끌 역량이 없는 철종에 대한 우려, 임금을 잘 보좌할 것을 당부하는 서찰인데 뜻하지 않게 조정의 최고결정권자가 된 순원왕후의 내면적 고뇌가 묻어난다는 것이 이승희 교수의 분석이다.
집안 어른으로 세도를 누리던 친인척들에게 근신을 당부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가령 김흥근의 아들이 별시에 급제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쓴 편지(1855년 봄)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기쁜 줄은 알지 못하고 불안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하늘이 넘치는 것을 미워하심이 분명하니 그저 집안 아이들 공손하고 검소하고 삼가기를 바라되 다 마음대로 가는 일이 없으니 두렵기 측량 없습니다"라며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다. 철종의 중전비 간택을 앞두고 쓴 편지(1850년 봄)에서는 이미 2명의 부마와 2명의 왕후를 배출한 자신의 가문에 대한 세간의 질시를 우려해 "이번은 노론, 소론을 가리지 말고 (중전 간택을) 하고자 하니 어떠한가?"라며 새 왕비를 소론 가문에서 선택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비추고 있다.
이 편지들은 근대국어 후반에 속하는 19세기 중엽의 국어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가령 19세기 초에는 서북방언을 제외한 모든 방언에서 'ㄷ구개음화' 현상('ㄷ' 'ㅌ'이 'ㅣ' 모음이나 'ㅣ' 반모음 앞에서 'ㅈ' 'ㅊ'으로 변하는 현상)이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편지들에서는 '톄력(體力)'이나 '형뎨(兄弟)'처럼 실제로 구개음화를 겪지 않은 형태가 더 많이 나타난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한글 편지들은 국어사 연구의 자료로 중시되지 않았으나 순원왕후의 편지들은 연대와 필자가 분명해 자료적 가치가 높다"며 "국어사뿐 아니라 19세기 정치사, 궁중사 연구에도 의미있는 편지들"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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