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하루였다. 지난달 23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중단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서해 주도권 장악
오전 7시30분께 공군의 F_15KㆍKF_16전투기가 굉음을 내뿜으며 연평도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사격훈련 시작에 앞서 북한 전투기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원활한 훈련 진행을 위해 일종의 방어막을 친 셈이다. 이후 공군 전투기는 4대씩 편대를 이뤄 서해 5도의 제공권을 장악했고, 지상의 공군기지에서는 정밀타격무기인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들이 비상출격태세에 돌입했다.
바다에서는 강력한 해군력으로 북한을 압박했다. 함대함, 함대공미사일을 탑재한 한국형구축함(4,500톤급) 두 척이 연평도 남쪽 50㎞ 부근 해역까지 밀고 올라와 전진배치됐고, 한국 최초의 이지스구축함인 세종대왕함(7,600톤급)이 뒤를 받치며 유사시 원거리 타격과 항공기 요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연평도서는 K_9자주포 12문과 다수의 105㎜견인포, 벌컨포, 81㎜박격포 등이 남서쪽 한국 해역을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연평도 포격 이후 새로 배치된 다연장로켓포, 지대공미사일 천마 등은 북한의 해안포기지를 겨냥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기상 안 좋아 계속 연기
8시7분께 연평면사무소에서 훈련안내방송을 내보냈다. 한 시간 후인 9시8분께 훈련대피방송이 흘러나오며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이르면 10시께 사격훈련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연평도 인근 해상에 안개 자욱하게 끼었고, 북한 쪽도 구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0시30분께 국방부는 “작전 환경이 복잡하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연평도 상황 외에도 다양한 지역을 상당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아니다”고 뜸을 들였다. 연평도 해상에 끼어 있는 해무는 물론이고 북한의 기상 상황 또한 관건이라는 설명이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사격훈련을 연기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대북 정보감시자산을 운용하기에 아직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1시께 재차 사격훈련이 예정됐다. 하지만 기상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 군 당국은 오후로 사격훈련을 다시 연기했다. 군 안팎에서는 “이러다 오늘 사격훈련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군 당국은 아무 설명 없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만 말했다.
오후 1시께.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오전 이어 국방부 지하 군사지휘본부를 찾아 “북 도발 시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사격훈련은 다시 초읽기에 들어갔고, 1시30분께로 시간이 잡혔다. 지난달 연평도 포격 때도 군은 1시께부터 사격훈련을 진행했기 때문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군은 “아직 여건이 덜 갖춰졌다”며 한 시간 뒤로 한번 더 미뤘다.
2시30분께 사격 개시
2시30분께 합동참모본부는 “사격훈련을 개시했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K_9자주포에 이어 105㎜견인포와 81㎜박격포, 마지막으로 벌컨포까지 붉은 화염이 서해의 푸른 바다를 가득 메웠다. 사격훈련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이제 온통 관심은 북한군의 추가 도발 움직임에 쏠렸다. 군사지휘본부에 모인 김 장관과 한민구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는 모니터로 연평도의 상황을 주시하며 육해공 합동전력의 대비태세를 점검했고 주한미군도 훈련 상황을 공유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4시4분께 합참이 “사격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불과 1시간34분간의 짧은 사격훈련이었지만 가슴을 쓸어 내리는 안도의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연평도 포격 당시와 사격훈련을 진행한 시간이 똑같았다. 그때도 1시께부터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2시34분께까지 1시간34분간 훈련을 했었다. 이에 대해 합참은 “특별한 의도는 없고 기상을 고려하다 보니 우연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격훈련이 끝났지만 군은 국지도발 최고 대비태세인 진돗개하나를 계속 유지키로 했다. 주한미군 20여명도 당분간 연평도에 남아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을 계속 분석할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포성은 멎었지만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사격훈련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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