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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 <1>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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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사건&사람] <1>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입력
2010.12.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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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찰 드러났는데 왜 정부는 사과 안하나" 마르지 않는 눈물처제는 충격 받아 한쪽 귀 멀어, 믿었던 직원들도 배신… 회사 그만 둬"국민이 국가 믿을 수 있나" 묻기 위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 준비 중

"현 정부의 민간인 사찰을 겪으면서 처제는 충격을 받아 한쪽 귀가 멀었고, '내 마음 속의 유일한 제자'라며 저를 아끼시던 은사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김종익(56)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피해자로서 그 동안 자신이 겪은 신산(辛酸)한 삶을 말하는 내내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앙다문 입이 다시 열렸다. "이런 국가를 국민들이 어떻게 믿고 의무를 다하겠습니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김씨에 대한 사찰이 표면화한 것은 2008년 9월. 김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른바 '쥐코' 동영상을 빌미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가 대표로 있는 KB한마음에 대해 두 달간 불법 압수수색과 광범위한 관련자 소환조사를 벌였다. 지원관실은 회사 직원들과 원청업체인 국민은행에 압력을 행사해 김씨를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지분 이전까지 하게 했다. 공직자의 윤리를 감시하는 기관이 민간인에게 무차별 사찰을 감행한 것이다.

기자가 김씨를 만난 것은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의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대걸레를 잡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한내'는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1999년 교통사고로 숨진 김씨의 친동생 종배씨의 유업을 이어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정리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김씨와 아홉 살 터울인 종배씨는 1982년 성균관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갑자기 소속도 알 수 없는 기관원들이 김씨의 집에 들이닥쳤다. 종배씨를 찾기 위해 나왔다는 말만 하고는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그 충격으로 첫 아이를 유산했다.

아내의 유산도 그렇지만 동생이 걱정이었다. 한 달간 여기저기 수소문하던 중 경찰의 연락을 받고 서울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를 찾았다. 동생은 온 몸에 피멍이 든 채 말 없이 김씨를 맞았다. 이후로도 고초를 겪은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잘못된 국가 권력은 30년 가까이 그렇게 김씨의 가정을 괴롭혔다. 그래도 김씨는 "예전부터 권력에 의해 부당한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민간인 사찰도 다른 사람보다는 담대하게 겪어낼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졸업 후 노동운동에 몸을 내던졌던 동생을 주변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매년 추모제를 지내고 2007년 영등포에 사무실까지 마련한 동생의 지인들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민간인 사찰에 시달리느라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마음의 짐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이곳에 거의 매일 출근해 청소나 문서 정리, 일본어 자료 번역 등 손을 보태고 있다.

물론 재정적인 도움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도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찰이 시작된 직후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사표를 내면서 수입이 끊겼다. 10여 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가입하고는 잊고 있었던 보험금 1,000만원과 아내의 휴면계좌에서 나온 500여만원 등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불만 없이 버텨준 큰 아들이 그저 고맙고 든든할 뿐이었다.

그가 겪은 경제적 곤란은 사람에 대한 실망에 비하면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사찰이 시작되자 돈을 빌려준 사람은 물론이고 회사 직원들까지 그의 연락을 피했다. 특히 3년 가까이 같이 출퇴근하면서 신뢰를 쌓았던 부하 직원 A씨의 배신은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A씨는 김씨가 정부의 사찰을 피해 일본에 나가 있던 2008년 10월 KB한마음의 지분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자신에 대한 사찰 때문에 회사가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분을 넘겼다. 지난 10월 김씨에 대한 사찰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이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에게 징역 1년6월, 김충곤 점검1팀장에게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등 민간인 사찰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 김씨는 회사로 돌아가려 했지만 A씨를 중심으로 직원들이 거부하고 나섰다. 그는 "직원들에게 너무나 실망해 회사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법성이 드러났는데도 정부는 그에게 사찰 이유에 대한 해명과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건이 불거진 뒤 정부와 검찰의 소극적인 대처도 불만이다. 김씨가 MBC PD수첩을 통해 불법사찰 사실을 폭로한 것은 올 6월29일. 그러나 총리실은 6일이 지나서야 이를 인정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그 나흘 뒤에야 총리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때는 이미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결정적 증거가 대부분 삭제 또는 파괴된 뒤였다. 이 때문에 청와대의 개입 등 핵심 의혹은 이를 뒷받침할 숱한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밝혀지지 못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제 소송은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해 국가가 얼마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국가를 믿고 따를 수 있을지를 묻는 것이며, 이런 일을 통해 공무원들이 불법적인 일을 했을 때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는가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치 않다며 국가와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려는 김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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