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준비중인 자동차보험 종합 개선대책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자보수가) 인하 방안'을 놓고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보수가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은 환자의 치료비를 자동차보험금으로 지급할 때 적용되는 진료 단가. 그런데 현재 자보수가는 같은 병을 치료하는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진료수가(건보수가)보다 최대 15% 가량 높다.
보험업계는 이런 차이 때문에 병ㆍ의원들이 자동차보험 사고 환자를 더 반기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은 치료나 입원을 권유 또는 유도해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보험금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보수가를 건보수가와 같은 수준으로 일원화하거나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낮춰야 자동차 보험금을 아낄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내는 보험료도 인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자보수가가 꾸준히 현실화돼 건보수가와 큰 차이가 없으며, 교통사고 환자는 치료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현재의 수가 차이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보수가는 1995년 처음 고시됐으며, 당시에는 건보수가에 비해 최대 130% 높은 수준이었다. 이후 99년에 최대 70%, 2001년 최대 36%를 거쳐 2003년에는 최대 15% 차이로 낮아진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료수가를 둘러싼 대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년째 보험업계와 의료계, 또 양 업계를 관장하는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간 의견 차이로 매번 자동차보험 개선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제외됐으며 이번에도 가장 큰 난제로 떠올랐다. 진료수가 일원화,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자보 수가 인하해야 한다
자동차보험의 비합리적 수가체계는 일부 환자 및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불필요한 입원, 과잉진료 및 허위·부당청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보험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보험료 인상 및 사회적 비용 상승으로 그 피해가 서민에게…
현재 자동차보험 환자는 건강보험보다 병원별 진료수가 높은 가산율을 적용 받는다. 또 자동차보험은 입원기간이 길수록 입원료 체감효과가 큰 건강보험에 비해 체감효과가 미미하거나 아예 적용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입원환자의 1인당 진료비를 비교하면 상황을 금방 알 수 있다. 대퇴골 골절 병명을 가진 환자를 진료했을 때 건강보험이 725만원, 자동차보험은 1,293만원으로 자보수가가 약 1.8배 더 높고, 6인 병실에 50일 간 입원할 경우 건보환자는 146만원, 교통사고 환자는 217만원의 입원료가 발생해 자동차보험 환자가 71만원을 더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국민권익위ㆍ2009)
같은 의료행위인데도 진료수가뿐 아니라 진료량까지 차별적으로 적용해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과잉진료 및 장기입원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경미한 후미추돌 사고로 목 부위에 부상을 당한 경우다. 건강보험 평균 입원율은 2.4%인데 비해 자동차보험은 33배인 79.2%에 이른다. 또 자동차보험 환자의 입원율은 60.6%로, 일본의 6.9%에 비해 9배 이상으로 높다.
의료계에서는 진료수가 체계를 달리 적용하는 이유가 교통사고 환자의 응급성ㆍ복합성ㆍ중증도 때문에 진료량이 많으며, 환자가 완치 될 때까지 충분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은 진료수가가 원가보다 낮게 책정될 수 있지만, 사보험인 자동차보험은 높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료수가 체계는 진료행위의 특성(의사의 업무량ㆍ위험도ㆍ난이도 등)을 원가에 반영하는 행위별 상대가치 점수에 의해 수가를 산정하고 있다. 이미 난이도가 높아 진료행위가 복잡해지면 상대가치 점수가 높아져 수가가 비싸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의료계는 '교통사고 환자 특성을 반영해 가산율을 더 높게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지만, 건보체계에 이미 그런 장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 자보환자는 완치가 될 때까지 충분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모든 치료는 완치를 목적으로 하며, 사고원인에 따라 진료내용 및 치료기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병명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교통사고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보다 특별히 다르거나 더 많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의 원가보전 여부에 대해서는 발표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 주장하는 연구결과에 따르더라도 비급여 수입을 포함한 전체 수입과 비용을 비교하면 원가보전율이 100%를 넘는다. 또 건강보험 수가 인상은 급여확대를 통한 비급여의 축소와 비급여에 대한 관리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원가를 훨씬 상회하는 비급여 수가에 대한 개선을 동시에 병행해야만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등록대수는 약 1,787만대(올 10월 기준)로 모든 가정이 한 대씩 소유할 정도로 필수품이 되었고, 자동차보험은 법에 의해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어 공보험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자동차사고를 사회적 재해로 인식하여 자동차사고 환자에 대해 건강보험으로 처리하거나 동일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또한 의료비의 부담주체에 따라 진료수가가 차별 적용되고 있는 것은 형평의 원칙과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자동차보험의 비합리적 수가체계는 일부 환자 및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불필요한 입원, 과잉진료 및 허위ㆍ부당청구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보험금 누수는 보험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며 보험료 인상 및 사회적 비용 상승으로 그 피해가 서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공정한 사회질서 및 국민권익 보호 차원에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체계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득로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본부장
● 자보 수가 인하 안된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는 의료원가의 70% 수준으로 과거 정책적으로 선택한 저수가 정책인데 … 특히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외상성 질환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기 때문에 자동차보험 환자를 진료할수록 의료기관은 손해를 보게 된다.
보험 유형별 특성을 반영한 수가체계가 적용되어야 하나,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 수가를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그나마 제도 도입 초기에 응급ㆍ외상성 등 환자의 특성 및 현행 건강보험수가 수준을 고려하여 종별 가산율 및 입원료 체감율을 건강보험과 달리 운영하도록 의료계와 보험업계가 합의한 바 있으나, 이후 보험업계의 일물일가(一物一價) 주장으로 종별 가산율이 계속 인하되어 왔다.
수가일원화에 대하여 의료계는 수용불가 입장을, 해당 부처에서도 진료 원가에 대한 분석과 건강보험 수가의 합리화 등 전제조건 충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거듭 밝힌 바 있다. 단순히 일물일가라는 명분에 맞춰 수가 일원화가 불가피하게 수용될 경우, 공평ㆍ타당한 보상의 저해 등 심각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주로 내인성 질환 치료를 주목적으로 하는 반면, 자동차보험은 응급ㆍ외상성(골절, 복합상병 등) 질환 치료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동차 보험은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없고 장기입원, 상해등급 및 후유 장애 등에 따른 보험(보상)금 지급, 원상회복 기대심리에 의한 진료 요구 등이 있는 태생적 특성 때문에 보험급여 수준이나 수가 및 심사체계가 건강보험과는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
또 현행 건강보험 수가는 의료원가의 70% 수준으로 과거 정책적으로 선택한 저수가 정책인데, 이를 자동차 보험이 고유 특성을 무시한 채 그대로 준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이다. 특히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외상성 질환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기 때문에 자동차보험 환자를 진료할수록 의료기관은 손해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보험제도와 가장 유사한 일본의 경우, 보험 유형별 특성을 반영하여 자동차보험 수가의 의료행위료는 건강보험 수가의 144%, 약재나 진료재료는 120% 수준으로 산정되어 있고 체감율도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본의 입원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이유는 종별 가산율 등 수가체계 때문이 아니며, 자동차보험 제도 자체의 특성과 현행 보험회사의 잘못된 보상체계 때문이다. 즉 보상규모가 입원 일수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여서 보상금을 많이 받으려면 입원을 해야 하는 불합리한 합의구조가 장기입원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개선대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또 현재 자동차보험 장기입원은 주로 병ㆍ의원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병ㆍ의원의 종별 가산율은 건강보험과 동일하며, 체감율도 함께 적용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장기입원과 무관한 종합병원 등에 대해 종별 가산율 인하 및 입원료 체감율을 적용하더라도 장기입원 및 과잉진료 감소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보험업계의 자정노력 없이 획일적 수가적용으로 보험회사의 진료비 지출만을 감소시키겠다는 것은 보험회사의 이익으로만 연결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대형병원의 교통사고 환자 기피현상 심화로 교통사고 환자의 건강권이 침해받게 될 것이다.
저수가 체계 및 보험유형별 특성을 반영한 수가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수가 일원화는 현재의 의료상황을 무시하고 의료기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 각 보험제도의 특성을 반영하고 근본적 문제에 대한 우선적 해결 없이 단순히 일물일가의 명분 하에 의료기관에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방법으로 일원화된 수가를 추진하려는 방안은 철회돼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의료기관의 자동차보험 '강제 지정제'를 '계약제'로 전환하여 의료기관과 보험회사의 계약에 따라 종별 가산율 등 수가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다각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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