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해 4개월 치 전기요금 587만원을 내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제3자 명의로 전기를 신청, 버젓이 새 공장을 돌렸다. 이런 경우 A씨가 본인 명의로 전기를 신청하지 않는 한 한국전력에선 이를 색출해 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지난 6월 한전 경기본부에선 은폐미수 추적시스템을 가동, A씨를 찾아냈고 결국 집 주소로 찾아가 미수액을 모두 받아냈다. 부인이 한전에 대가족 할인(전체 가족수가 5명 이상일 때 전기 요금 20% 할인) 신청을 하면서 A씨의 이름을 올린 것이 '은폐미수 추적 시스템'에 걸린 것. 한전에선 최근 경기본부의 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연간 250억원에 달하는 미수요금 중 상당액이 회수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전의 혁신 프로그램인 'TDR(Tear-Down & Redesign) 활동'이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TDR이란 당면한 문제를 손에 잡히는 수준까지 풀어 헤친 뒤(Tear Down) 이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와 시스템을 재구성(Redesign)하는 성과 창출 활동. 김쌍수 한전 사장이 취임 후 인사 혁명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둬 추진해 온 과제다.
'은폐미수 추적 시스템'도 이러한 TDR 활동의 결과였다. 한전 경기본부에선 올 초 고의적인 전기요금 납부 회피자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을 위해 '발본색원팀'을 구성했다. 먼저 고객 정보 시스템을 통합관리, 분산되어 있던 고객 정보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바꿨다. 특히 이전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 고객을 검색하던 것을 대가족 할인, 복지 할인, 자동이체, 가상계좌 신청 시 입력하는 정보까지 자동 검색되게 개선했다. 평상시엔 적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신상을 숨기는 전기요금 납부 회피자도 전기요금 할인 등 혜택이 주어질 때 신상을 드러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경기북부본부의 '상식파괴팀'이 동계 배전 선로의 운전 기준을 개선, 300억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도 TDR 활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통상 배전 선로는 1회선 당 허용 전류가 평상시 1만kVA(킬로볼트암페어)이다. 그러나 상식파괴팀은 겨울엔 허용 전류가 여름에 비해 증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테스트 결과 온도가 20도 내려가면 허용 전류도 15% 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경기북부본부에선 겨울철 배전 선로의 1회선당 허용 전류를 1만2,000㎸A로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경기북부본부에선 겨울에만 과부하가 걸리는 배전 선로 374회선에 대해 추가 투자비 없이도 과부하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한전에선 경기북부본부처럼 허용 전류를 늘릴 때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이상이 없는 지를 다시 검토했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뒤 이를 전국으로 확대ㆍ적용했다. 300억원의 경비를 아끼게 된 것이다.
한전은 이러한 TDR 활동 성공 사례들을 전사 차원에서 공유하기 위해 17일 한전 수안보 생활수련원에서 혁신활동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가졌다. 행사에선 115건의 TDR 활동 중 12건의 우수 과제가 발표됐고 1,743건의 1인1프로젝트 중 우수사례 18건에 대한 시상도 있었다. 한전은 지금까지 TDR 활동을 통해서 2008년 1,117억원, 2009년 4,200억원의 경비 절감 효과를 봤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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