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설치미술 작가 이수경(47)씨는 한 전시회 오프닝에서 국악인 정마리(35)씨가 부르는 정가(正歌)를 처음 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전래의 궁중음악인 정악 중 성악곡을 가리키는 정가는 가사를 길게 늘여 부르는 특성으로 인해 정제된 목소리의 울림이 한층 강조되는 음악이다. 이씨는 정씨를 졸라 정가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겨울 앞으로 1년간 정마리씨의 정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결정체를 나 혼자 듣기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전시가 1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정마리의 정가, 이수경의 헌신’이다. 이씨는 지난 1년간 정씨의 노래를 들으며 매일매일 드로잉을 했다. 작업의 모티프가 된 정가뿐 아니라, 불교음악 범패, 서양의 성가(聖歌)인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 이슬람 경전을 낭독하는 소리 등이 정씨의 목소리를 거쳐 이씨의 종이 위로 옮겨졌다. 색연필로 그린 ‘매일드로잉’에는 종교적 느낌과 만화적 느낌을 오가는 인물, 의미를 알 수 없는 도상들이 등장한다. 이씨는 “음악을 들으며 내가 모르는 저 마음 밑바닥의 무언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160여 개의 드로잉 작업이 둥근 벽을 따라 전시돼 있고 사이사이 설치된 4개의 스피커를 통해 작가가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술관 1층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매주 금ㆍ토요일에 정마리씨의 정가 공연이 열린다. 캄캄한 공간의 한쪽 벽을 길게 뚫어 만든 하얀색 사각형 무대에서 흰 한복을 입고 끝없이 이어질 듯 긴 호흡으로 노래하는 정씨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각예술이기도 하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관람료 2,000원, 공연 관람료 1만원. (02)760-4850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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