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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치킨 값이 비싸다고?

입력
2010.12.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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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한 분이 5년여 전 경기 일산의 초등학교 앞에 치킨 가게를 열었다. 농협이 100% 출자한 자회사의 프랜차이즈 브랜드여서, 값싸고 질 좋은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임대료와 매장운영비 등 부대비용을 제하고 나면 인건비 뽑기도 쉽지 않았다. 전 재산인 1억원을 투자해 부부가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지만, 이익률(마진)이 웬만한 맞벌이 부부 수입의 절반도 안돼 결국 3년 만에 가게를 접었다.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이 7일 천하로 막을 내렸지만, 기존 치킨 가격의 인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 침해 논란으로 시작된 '치킨 전쟁'이 동네 가게들의 폭리 논쟁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18일을 '치킨 혁명의 날'로 정하고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까지 예고했다.

치킨 전쟁' 핵심은 자본의 횡포

이명박 대통령도 "2주에 한 번씩은 치킨을 먹는데 치킨 값이 좀 비싼 것 같다"고 거들어 가격거품 논쟁에 가세했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가격담합 여부를 조사한다는 소식이다. '통큰치킨'의 판매 중단에 불만인 사람들은 5,000원짜리 치킨을 못 팔게 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며, 싼 값에 먹을 수 있는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 이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대기업이 시중의 3분의 1 가격으로 치킨을 팔면, 동네 가게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골목상권이 다 무너져서 영세 가게들이 문을 닫아도 '통큰치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대기업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영세 가게들을 시장에서 몰아낸 뒤 다시 가격을 올릴 것이다. 역마진을 감수한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피자 치킨 등 생계형 업종이 몰락하면 소비자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값싼 치킨을 못 먹게 된 소비자들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동네 가게들이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치킨 한 마리가 팔릴 때마다 3,000원의 마진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문제를 삼자면 프랜차이즈 본사가 공급하는 재료비 책정의 적정성 여부일 텐데, 업계를 닦달해서 치킨 가격을 1,000~2,000원 내리더라도 '통큰치킨'에는 한참 못 미친다.

회사 인근 음식점에 가보면 칼국수나 냉면 한 그릇 값이 8,000원이다. 집에서 2만원에 치킨 한 마리 반을 시키면 네 식구가 푸짐하게 배를 채운다. 한 마리에 1만4,000원 가량 하는 동네 치킨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라, 5,000원짜리 '통큰치킨'이 비정상인 것이다. 롯데마트가 손해를 감수하며 치킨을 팔았다고 보는 게 옳다. 이마트 피자처럼 미끼 상품을 통해 고객들을 유인하는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인 셈이다.

국내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활동인구의 20%가 몰려 있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더구나 음식점 의류점 호프집 등 생계형 업종이 대부분이다. 고령화로 수명은 늘어나는데, 직장 은퇴 연령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해 치킨ㆍ피자ㆍ족발 가게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만, 온 가족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도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로 벌이가 시원찮다. 그런데 대기업은 떡볶이, 순대, 자장면 장사까지 해가며 동네 가게들의 씨를 말리려 든다.

대기업 문어발 확장 규제해야

돈만 되면 영세 상인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대기업의 탐욕이 우리 사회 양극화의 주원인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우리 헌법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절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도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고,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과 영업품목을 제한해 중소상인을 보호한다. 재벌이 동네 골목상권까지 잠식해 들어와도 속수무책인 사회는 공정사회가 아니라 야만사회라고 불러야 옳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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