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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편집과 위키리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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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편집과 위키리크스

입력
2010.12.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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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이 발표되었다. 여러 수상작들 중에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은 편집 부문이다. 편집자를 그만둔 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지금도 편집이 잘된 책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편집에서 2종의 공동 수상작이 나왔다. 그만큼 편집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이리라.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한 말이다. 편집자일 때는 이렇게 편집의 역할을 인정하는 작가랑 일하고 싶더니 작가가 된 지금은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뛰어난 편집자가 그립다. 처지가 달라지며 마음이 바뀐 건 사실이지만, 편집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편집은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 날것의 원고와 수많은 정보 속에서 편집자는 버리고 재단하고 선택하는데, 그때 솜씨 좋은 편집자일수록 지우고 덧붙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편집이 잘된 책은 독자에게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눈에 띄는 장식도 눈에 거슬리는 억지도 없이 독자를 설득하는 무위(無爲)의 편집이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편집이 중요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편집이 필수다. 문제는 편집의 기준인데, 대개의 국적 언론사는 국익, 즉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는다. 국가를 부정하지 않는 한 국익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논란은 권력이 일방적으로 국익을 자임하면서 제 입맛에 맞는 편집을 요구할 때 생긴다. 특히 위기에 빠진 정권일수록 정보를 통제하고 기밀을 양산하는데, 이때처럼 권력에서 독립된 편집권이 절실할 때도 없다.

1971년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조작으로 확대되었음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사건은 이런 권력의 행태에 제동을 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국 정부는 문서를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와 그것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등을 간첩으로 몰았지만, 대법원은 "국가의 이해관계와 국민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험에 처할수록 그 전쟁의 진실을 국민이 더 잘 알아야" 하므로 "정부의 비리를 폭로한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참된 국익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악행을 인정하고 교정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믿은 사법부 덕분에 언론은 편집권을 지켰고 정의는 구현되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위키리크스는 자본과 권력이 제 잇속에 따라 정보를 편집하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저널리즘이다. 미국은 비밀 외교문서를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게 간첩죄를 적용하고 후원계좌를 막고 나섰지만, 그럴수록 위키리크스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비무장 민간인에게 기관총을 난사하고 그것을 국가기밀로 은폐하는 현실에서 과연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단죄할 수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수십만 건의 비밀문서를 특별한 편집 없이 공개한 위키리크스로 인해, 지금까지 국익이란 명목 아래 정보를 선별 공개하던 정부와 언론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권력이 국익을 내세워 잘못을 은폐하지는 않는지, 언론이 철저한 취재로 이를 감시하는 데 실패한 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무책임한 폭로 탓이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권력의 지나친 비밀주의가 폭로를 부추긴 것은 분명하다. 비판적인 보도를 통제하고 꺼림칙한 자료를 디가우저로 삭제하는 데 재미 들린 이들은 편집이 지나치면 독자는 행간을 읽으며 비밀은 폭로를 부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리라.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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