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구원을 내세우는 종교가 우리 미래의 불안 요소가 된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그러한 진단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듯하여 몹시 걱정스럽다. 이는 단순히 종교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종교가 함께 있으면서, 또 종교와 현실의 정치 권력이 적절치 못한 관계를 맺으면서 드러나는 문제이다. 바로 지금 그러한 부정적인 모습이 가장 극렬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정부와 종교의 갈등, 종교와 종교간의 갈등을 이대로 두면 종교로 말미암아 이 땅에 피를 흘리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신앙과 포교의 자유를 혼동
지금의 문제는 종교다원사회를 헌법에 명시한 사실, 그 속에 여러 종교가 있다는 사실, 그러한 종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 권력과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축으로 성립한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로운 관계에 놓이지 못하고 부조화와 갈등을 빚는 요인을 더듬어 올라가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신앙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를 혼동하는 일부 종교인과 공직자들이다.
신앙의 자유는 무한대이다. 그러나 포교의 자유는 무한대가 아니다.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포교는 타 종교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철저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극단에는 종교전쟁 밖에 나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간의 갈등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 종교가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는 원인도 결국 신앙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를 혼동하는 데 있다. 정치와 현실 권력을 통해 특정 종교의 선교를 하는 것을 신앙심의 증표로 생각하는 일부 공직자들의 무지를 비롯해 포항시의 성시화 운동 등의 사례에는 바로 신앙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에 대한 혼동이 있다. 국가 최고권력자가 이런 사고의 혼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치권력과 종교간에 근본적인 불신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종교가 초래하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모든 종교가 자기 종교의 포교를 최우선으로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종교다원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국가질서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종교의 최고지도자들이 공동선언을 하는 방법 등을 통해, 자신의 종교를 선양한다는 명목 아래 타 종교나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신앙의 증명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에 대한 해교(害敎)행위라는 것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또한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타 종교와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선교행위를 하는 종교는 모든 종교의 공적(公敵)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종교다원사회 헌법질서 따라야
복잡한 상황일수록 원칙에 의거해서 풀어야 한다. 이는 현 정권과 마찰을 빚고 있는 종교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요구된다. 종교가 종교라는 점에서 특별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다. 정치와의 문제는 정치적인 수순을 통해 풀어야 한다. 이번 조계종과 정부의 갈등에 대해 조계종이 순진한 대처를 하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일부 여론도 있다. 그렇다면 조계종의 대처는 어떠해야 할까?
원론적으로 말해 그 순진함이 어떻게 정치적인 힘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길 밖에 없다. 정치적 거래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를 내세운 감정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현실정치의 틀 속에서 어떻게 종교적인 이념을 정치적인 힘으로 바꾸어내느냐는 모습을 통해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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