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1위, 삼성생명의 해외 시장을 겨눈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올 5월 주식시장 상장 당시 글로벌 비전을 밝힌 데 이어, 최근 그룹 내 대표적 '중국통'인 박근희 사장이 취임하면서 글로벌 행보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생명의 해외영업은 제조업(반도체 휴대폰)에서 일궈낸 세계제패의 신화가 과연 금융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지, 그 시금석이 된다는 점에서 금융계는 물론 재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가자! 중국으로
이달 초 단행된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생명 보험영업사장으로 임명된 박근희 사장은 삼성의 중국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중국삼성 사장을 지낸 인물.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통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도 박 사장의 임명을 "삼성생명이 중국비즈니스를 확대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박 사장은 지난 15일 취임 후 첫 공식행사를 아예 중국에서 가졌다. 중국 내 합작법인인 중항삼성생명을 찾은 그는 취임일성으로 '글로벌화'를 꼽았다. 그는 "삼성생명이 언제까지 국내에 머물 수는 없다"며 "글로벌 1위를 목표로 모든 경영을 글로벌화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중항삼성이 그 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조만간 베이징에 다시 와 (합작파트너인) 중국항공 고위층과도 깊은 논의를 나누겠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이 같은 행보는 그의 경험과도 무관치 않다. 197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으로 입사한 그는 그룹 내 전자 부문의 글로벌화를 몸소 체험했다. 그룹 경영진단팀장을 지내면서는 "전자는 국제화에 성공했는데 금융은 왜 국내에 머물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2005년부터 중국삼성 사장을 맡아 중국 내 제조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 간 분위기 차이까지 확인하면서 금융 글로벌화 신념을 더욱 다졌다는 후문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박 사장이 취임 직후 조직개편에서 기존 해외사업팀을 본부로 승격시키고 첫 본부장에 중국 전문가(심재호 전 중항삼성 법인장)를 임명한 것도 평소 신조를 반영한 결과"라고 전했다.
왜 글로벌화인가
이 같은 삼성생명의 움직임은 국내 시장을 평정했으니 해외로 눈을 돌리겠다는, 막연한 '1등의 여유'는 아니라는 평가다. 오히려 글로벌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이수창 총괄사장은 지난 5월 상장 직후, 영업의 큰 방향을 '질적 성장'과 '글로벌화'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험가입률이 90%에 이를 만큼 포화 직전에 다다른 국내 보험시장상황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보험가입 절대인구 감소 ▦저금리 기조로 인한 자산운용 수익률 저하추세 등을 감안하면 더 이상 국내 영업으로는 지속성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당시 돌파구로 ▦기존 국내 고객 유지를 위한 '90ㆍ80' 전략(보험계약 1년이상 유지율 90%, 2년이상 유지율 80% 달성)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시장 진출을 천명했다. 이런 전략이 최근 박 사장 취임 이후 더욱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은 상태. 현재 중국 생명보험 시장에서 중항삼성을 포함한 전체 외국계 보험사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3%. 나머지 97%는 중국계 회사가 싹쓸이하고 있다. 이는 합작 형태의 진출만 허용하는 외국자본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다 중국인들의 배타성이 합쳐진 결과다.
삼성생명은 그럼에도 중국의 '미래'와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박 사장은 "향후 외국계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과 아직 3,600달러(작년 기준)에 불과한 1인당 국민소득이 앞으로 1만달러, 2만달러를 돌파할 때마다 보험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전망이어서 중국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자연히 영업의 초점 역시 '철저한 현지화'에 맞춰진다. 현지에 나가있는 국내 기업과 교민 상대 영업이 주였던 그 동안 국내 금융사들의 '무늬만 해외진출'에서 벗어나 중항삼성과 태국의 시암삼성은 설계사부터 현지인을 채용해 철저하게 중국ㆍ태국인을 공략하고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