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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한국 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한국 북 디자이너 1호' 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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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한국 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한국 북 디자이너 1호' 정병규

입력
2010.12.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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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상이 나한테 왔을까, 싶었습니다.”

‘한국 북 디자이너 1호’로 꼽히는 정병규(64) 정디자인 대표는 제51회 한국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고 했다. 디자인이라는 말조차 귀에 설었던 1970년대 후반부터 북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하고 키워온 그의 이력에 비추면, 뜻밖이라는 수상소감이 오히려 뜻밖으로 들린다. 그는 “디자인 디자인, 말들은 많이 하지만 정작 디자이너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 풍토 아니냐”면서 “북 디자인이 상을 줄 만한 대상이 됐다니 자랑스럽고, 후배들한테 낯이 서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을 이었다.

고려대 불문과 4학년 때 ‘고대신문’ 편집장을 지내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 시위에 휘말려 학교를 떠난 그는 1975년 월간 ‘소설문예’ 편집부장으로 출판계에 발을 들였다. “책을 워낙 좋아했고 많이 읽다 보니 만들고 싶어졌다.” 이후 민음사 편집부장을 거쳐, 1978년 홍성사를 설립해 발행인이자 기획ㆍ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는 당시만 해도 편집의 한 공정으로 묻혀있던 북 디자인의 매력에 빠진다. 1982년 파리 유학을 떠났고 2년 후 귀국해 국내 최초의 편집 기획 및 디자인 전문 회사를 차렸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세상과 만난 책은 3,000여 종에 이른다. 그가 만든 등의 책은 국내 사진집의 모델을 제시했고, 창비시선집 등을 통해서는 획일적이기만 하던 전집 디자인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다.

요즘은 북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못해 ‘화려한 치장’이 범람하지만, 정씨가 제시하는 북 디자인의 개념은 의외로 단순하다. “책이 담고 있는 말을 표지에서 마지막 한 장까지 유기적으로 엮어 보여주는 것이 곧 디자인이다.” 그는 이를 ‘책격(冊格)’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책에도 격이 있습니다. 책의 격을 그에 맞게 드러내주는 것이 편집이자 디자인이지요. 화장을 잘못하면 개성을 잃는 것처럼 격에 맞지 않는 디자인은 책을 망칩니다.”

정씨는 책이 나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어디서 승부가 나는지 살핀다고 했다. “예술은 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만 주문생산 시스템인 디자인은 거의 강제적으로 매번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해요. 내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가 승부의 대상인 거죠. 그건 출판사가 만족하고 책이 잘 팔리는 상업적 성공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그는 “실험과 승부의 연속인 북 디자인은 출세하고 큰 돈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생들에게도 ‘진짜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일 못한다’ ‘길게,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삶에도 곡절은 있었다. “정신없이 40대를 보내고 나이 쉰에 접어들자 평생 이거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40대면 은퇴하는 시절이었다. 고민 끝에 20여년 작업한 책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작품집을 냈고, 계속 일할 힘을 얻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는데, 요즘은 정년 맞은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됐단다. “새로운 전신(轉身)을 해볼까 해요. 기획과 편집, 디자인을 아우르는 ‘전체로서의 책 만들기’ 작업이랄까.”

그가 꿈꾸는 ‘종합기획’은 새로운 책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은 보고, 읽고, 만지는 매체입니다. 그 동안은 보고 읽는 것만 중시했는데,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책에 담긴 정보와는 다른 책의 물질성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났다고 봐요. 책 중에는 얼른 디지털화해야 할 것들도 있지만, 만지고 느껴야만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는 “디지털 정보와는 다른 책의 미래는 여전히 밝고,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며 “전자책의 공습으로 출판계의 미래가 어둡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돈 잘 버는 일부 출판사들의 헛소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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