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현대건설, 정부가 모처럼 민영화에 팔을 걷어 붙였던 우리금융. 17일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절차 중단을 공식 선언하고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그룹과의 매각협상 중단을 사실상 굳히면서, 정부지분이 포함됐던 두 건의 대형 딜은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M&A가 깨진 것도 문제지만, 이번 실패로 향후 M&A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 정부지분이 포함됐던 곳들인 만큼, 자연히 M&A 실패에 따른 정부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 원점
지난 월요일(13일) 우리금융의 '입찰 포기' 선언은 곧 민영화 무산을 뜻했다. 유일한 인수후보가 빠진 상황에서 제아무리 정부라도 매각일정을 계속 끌고 가기는 무의미했다. 결국 민영화 중단을 공식 선언하는 데 채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중단 배경을 설명하면서 "7월에 밝혔던 매각기준(공개경쟁입찰을 통한 지배지분 매각)을 유지하면서는 당초 의도했던 '유효경쟁'과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새 기준을 정해 조속히 다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유연한'의 의미는 유효경쟁과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이전처럼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민상기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7월 발표 때는 사실 공적자금 회수에 가장 큰 무게를 뒀지만 새 기준에서는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 있다"며 "수의계약과 블록세일(지분을 일부씩 나눠 파는 것)도 검토 대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 기준이 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정부가 특정 후보와 수의계약을 하거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블록세일에 나설 경우, '특혜 매각'이나 '헐값 매각'이라는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 꼬인 현대건설 매각
현대건설 매각은 이날 돌이킬 수 없는 외길(매각 중단 후 장기 소송전)로 접어 들었다. 채권단 운영위원회(외환ㆍ우리은행, 정책금융공사)는 이날 전체 주주협의회에 표결을 부칠 4개 안건을 확정ㆍ발송했다. 전날 의견을 모은 ▦현대그룹과의 매각 양해각서(MOU) 해지 동의안 ▦현대그룹과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승인안에 더해 ▦현대그룹으로부터 받은 이행보증금(2,755억원) 반환 여부 등을 운영위 협상에 위임하고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줄 지는 향후 주주협의회에서 논의한다는 안건이 추가됐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모두 파행에 맞선 법적 대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어 매각전은 상당 기간의 법정 공방이 끝나야 재개될 처지다.
허술한 정부
잇단 M&A 무산 사태를 두고 시장에서는 '정부의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금융은 정부가 직접 매각을 주도했고, 현대건설 역시 정책금융공사를 통해 정부 의중이 개입됐는데 한결같이 허술하고 임기응변식이었다는 것.
우리금융의 경우,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로 선회한 후 독자생존을 추진하는 우리금융만 남자 정부는 사실상 매각중단 수순에 접어든 인상이 짙다. 하루 빨리 민영화하는 것이 금융산업 발전에 좋다는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만 매달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이 많다.
이날 민상기 위원장이 사실상 "앞으로는 공적자금 회수 기준에 무게를 덜 두겠다"고 밝힌 것은, 결국 정부가 스스로 실책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 한 금융계 인사는 "눈에 보이는 가격에 집착하는 태도 자체가 결국 헐값 매각 논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보신주의의 방증"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매각은 더하다. 애초 치밀한 검토 없이 현대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줬다가, 뒤늦게 '승자의 저주'가능성이 우려되자 허겁지겁 추가자료 제출을 절대적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정부 스스로 M&A의 룰을 깼다는 비판이 높다. 한 M&A 전문가는 "시장의 반응을 보고 구체적인 매각방식을 정하겠다고 나선 우리금융 방식이나 수시로 룰을 바꿔가며 결국 판을 뒤집은 현대건설 사례 모두 앞으로의 M&A 딜에 아주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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