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진 이라면 로베르트 슈만과 요하네스 브람스를 잇는 한 여인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슈만의 부인이었고, 브람스 평생의 연인이었던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 클라라. 독일 프랑스 합작영화 ‘클라라’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세인의 입을 바쁘게 만드는 세기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삼았다.
정열적인 음악인들이 얽힌 연애담이지만 견디기 힘든 질투와 뜨거운 정염이 스크린에 휘몰아치진 않는다. 정신병에 삶을 사로잡히는 슈만(파스칼 그레고리)의 불운, 슈만의 천재성을 흠모하면서도 그의 병간호에 지쳐가는 클라라(마르티나 게덱)의 고뇌, 슈만을 존경하면서 클라라를 연모하는 브람스(말릭 지디)의 순정한 갈등이 스크린을 차분하게 채운다. 남녀의 육체적 사랑 대신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세 남녀의 기이한 감정이 오선지 위로 엇갈린다.
영화는 낭만주의가 만개한 19세기 교향악단 지휘를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에 이주한 슈만 가족의 모습으로 출발한다. 슈만 부부와 브람스의 운명적인 만남, 세 사람의 한 지붕 생활, 브람스를 두고 벌어지는 슈만 부부의 낯선 질투, 슈만의 광기 등이 이어진다.
영화 도입부 빠르게 달리는 열차 안에서 슈만은 말한다.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고 뒤에 남겨진 듯해”. 클라라는 “다 스쳐가는 것도 좋잖아요”라고 응답한다. 이들 부부 사이에 다가올 삶의 균열과 엇갈린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중반부 슈만의 집 요리사가 슈만의 음악을 듣고 왈칵 눈물을 쏟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클라라가 “그가 힘들게 할 땐 기억하세요. 얼마나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는지”라고 말하자 요리사는 “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잖아요.)”라고 답한다. 남편의 재능을 사랑했다 불행해진, 또 다른 재능의 소유자 브람스에게 마음을 열며 죄책감을 느끼는 클라라의 파란만장한 삶이 축약돼 있다.
감독은 헬마 잔더스-브람스. 브람스 숙부의 자손이라 한다. 1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