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한 작물 연구에 1,3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필리핀에서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는 이 작물의 시험재배가 조만간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물은 ‘황금쌀’이라고 불리는 유전자변형(GM) 벼다.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와 있지만 GM 벼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여전히 팽팽하다. 다른 어느 작물보다 쌀은 우리 식탁과 밀접하다. 황금쌀 논란에 우리 역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소비자가 직접 혜택 받아
황금쌀은 황금색이다. 보통 쌀엔 없는 베타카로틴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베타카로틴은 몸 안에 들어가 비타민A로 바뀐다. 황금쌀로 밥을 해 먹으면 몸에서 비타민A가 만들어진다는 소리다. 인체는 스스로 비타민A를 만들지 못한다. 음식으로 비타민A나 베타카로틴을 섭취해야 한다.
황금쌀은 2000년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수선화와 옥수수에서 베타카로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8개를 찾아내 벼 유전자에 끼워 넣어 만들었다. 지금은 유전공학의 발달로 단 2개의 유전자만 조작하고도 황금쌀을 만들 수 있다. 베타카로틴 함량도 늘었다. 초기엔 내배유(쌀의 먹는 부분) 1g에 베타카로틴이 2마이크로그램(1㎍=100만분의 1g) 들어 있었는데, 이젠 30㎍이 됐다. 보통 사람의 양만큼 황금쌀밥을 먹으면 비타민A 필요량을 채울 수 있다.
황금쌀이 주목 받는 까닭은 소비자에게 곧바로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GM 작물은 사실 공급자 중심으로 개발됐다. 제초제나 해충에 잘 견디게 만들어 재배를 쉽게 하거나 생산량을 늘려 공급자가 더 많은 이익을 얻게 했다. 이에 비해 황금쌀은 비타민A가 부족해 야맹증이나 빈혈 영양실조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한국형 황금쌀’도 나왔다. 하선화 농촌진흥청 연구관팀이 베타카로틴 생성에 필요한 유전자 2개를 작은 유전자 조각을 사이에 두고 연결해 한 유전자처럼 만들어 쌀에 넣은 것. 하 연구관은 “베타카로틴 함량은 기존 황금쌀보다 낮지만 생산효율이 높고 유전공학적으로 더 앞선 기술”이라며 “유전자를 몇 개 더 연결하면 여러 기능을 가진 GM 쌀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스타링크?
필리핀에서 황금쌀은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도움으로 시험재배를 마치면 품종 등록과 종자 증식을 거쳐 2012년 말 유통될 거란 전망이다. 한국형 황금쌀도 2년 전부터 제한된 면적에 재배되면서 위해성 평가를 받고 있다. 평가 후 전문가심사위원회를 통과하면 품종으로 등록된다.
황금쌀 상용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황금쌀 보급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황금쌀이 기업보다 공공의 이익을 주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황금쌀로 건강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반대하는 쪽은 GM 벼 보급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준호 서울환경운동연합 부장은 “아무리 공공의 이익이 목적이라 해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다양하게 논의하는 게 우선”이라며 “기술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영양부족을 겪는 국가가 스스로 식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GMO반대생명운동연대와 녹색연합, 서울환경운동연합, 에코생협, 여성환경연대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공공 목적으로 개발됐어도) 상업화의 이익은 GM 기술 관련 지적재산권을 많이 가진 대규모 생명공학기업에게 돌아간다”며 “GM 쌀은 아시아의 식량주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경전문가나 생태학자들은 스타링크 옥수수와 마찬가지로 GM 벼 역시 재배하지 않고 유통만 해도 장기적으로 환경에 해로울 수 있음을 지적한다. 스타링크는 2000년 유럽에서 해충에 잘 견디는 유전자를 넣어 만든 GM 옥수수. 유통 과정 중 식용으로 승인되지 않은 미국과 일본에서까지 발견돼 재배가 중단됐다. 스타링크의 꽃가루가 다른 밭에 날아 들어가 보통 옥수수와 함께 자랐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례다.
국제사회의 다양한 입장
GM 벼를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나라는 아직 없다. 각국 상황에 따라 GM 벼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다르다. 중국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연 ‘유전자변형 쌀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바오롱 루 중국 후단대 교수는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해충저항성 GM 벼에 바이오안전성인증서를 발행했다”며 “수년 안에 상업적 재배가 목표”라고 밝혔다.
일본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접근한다.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마코토 다카노 일본 농림수산성 박사는 “일본인 30%가 갖고 있는 삼나무 꽃가루 알레르기를 완화시키는 GM 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부작용이 거의 없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자리에서 호주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존 베넷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일반 쌀과 섞이지 않도록 구분하는 기술이 필요하고, 식품이나 환경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절차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공익 위해 개발… 인도적 차원서 보급돼야"
“유전자변형(GM) 작물 개발에 드는 비용이 1이라면 출시 전 규제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이 10이에요. 그래서 GM 제품을 소수 대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죠. 규제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형질이 아니라 기술 자체를 규제하는 건 잘못됐다는 얘기죠.”
2일 ‘유전자변형 쌀에 관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황금쌀 최초 개발자 잉고 포트리쿠스(77ㆍ사진) 스위스 연방공대 교수를 강남구 삼성동 라마다호텔에서 만났다.
“예를 들어 해충저항성 면화를 만드는 방법은 2가지에요. 해충에 강한 돌연변이를 골라내 육종하는 것과 해충에 강한 유전자를 넣는(GM) 거죠. 둘은 같은 형질인데도 GM 면화만 규제 받아요.”
이 같은 규제가 없었다면 황금쌀은 개발 완료 시점에서 2~3년이 지났던 2002년 이미 유통됐을 거라는 주장이다. 식량부족을 겪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GM 규제가 강한 유럽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GM 기술 없어도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하죠. 황금쌀은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발됐어요. 개발비도 생명공학기업 신젠타를 제외하면 스위스 정부와 과학재단, 미국 애틀란타기아대책(AID)과 록펠러재단, 빌 앤 멜린다 게이트재단 등에서 지원했어요. 인도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GM 기술이 활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인도에서만 매년 4만명, 세계적으로는 수십만명이 비타민A 결핍에 시달린다. 황금쌀이 보급되면 이들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포트리쿠스 교수는 확신하고 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도 시험재배를 추진하려고 해요. 추가 재원이 필요합니다.”
환경과 인체에 대한 안전성이 불확실하다는 반대론이 적잖은 상황에서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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