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지난 14일 제출한 2차 대출확인서에 대해, 채권단이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초 요구했던 대출계약서가 아닌, 대출확인서만으로는 현대그룹이 나티시스 은행에 예치해 놓은 1조2,000억원의 자금성격에 대한 의구심을 풀 수 없다고 최종 판단한 것.
이에 따라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해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할 가능성 높아졌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미 이에 대한 가처분신청까지 낸 상태여서 장기간 법정공방이 불가피하며, 최악의 경우 매각절차가 아예 중단될 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채권단 잠정결론
현대건설 주주협의회 소속 8개 은행 실무자들은 15일 회의를 열어 전날 현대그룹이 제출한 2차 대출확인서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한 결과 '불충분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제출한 대출확인서는 당초 채권단이 명시한 '대출계약서 또는 텀 시트(세부 계약조건을 담은 문서) 등 구속력 있는 문건'에 해당되지 않아 효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2차 대출확인서에서 대출금이 ▦제3자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한 사실이 없고 ▦나티시스 은행 계좌 두 곳에 그대로 예치돼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권단은 2차 대출확인서 내용도 이달 3일 현대그룹이 제출한 1차 대출확인서와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2차 대출확인서를 통해서도 구체적인 계약조건이 담긴 내용을 알 수 없고, 실제 인출할 수 있는 돈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어 효력이 없다고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MOU는 어떻게 되나
채권단은 17일 주주협의회를 열어 MOU 해지여부 등을 논의한 뒤, 22일까지 최종결론을 낼 예정이다. MOU해지를 위해선 80%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현재 주주협의회 의결권은 외환은행(24.99%), 정책금융공사(22.48%), 우리은행(21.37%), 국민은행(10.20%) 신한은행(8.22%) 농협(6.28%) 하나은행(4.06%), 현대증권(1.47%), 씨티은행(0.93%)으로 이뤄져 있다.
그 동안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일부 입장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MOU해지 안건이 상정될 경우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관계자도 "현대그룹에 이미 충분한 소명 기회를 줬고 법률적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며 "어떤 최종 판단을 내리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어디로
채권단은 MOU를 해지해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할 경우,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매각협상을 진행한다는 입장. 현대차그룹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미 법원에 MOU해지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만약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채권단은 다시 현대그룹과 협상에 나서야 하고, 만약 기각하더라도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또 다른 민ㆍ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현대차 역시 소송으로 맞설 가능성이 높아 매각작업은 결국 2중, 3중의 소송전 양상을 띠며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혀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다"며 "채권단이 아예 매각작업을 없던 일로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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