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잡한 성추문에 휩싸인채 국정은 뒷전인 총리가 계속 자리를 유지한다는데 분노한 이탈리아 로마의 시민 10만여명이 거리로 나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1970년대 이후 로마에서 발생한 가장 큰 시위인데, '부끄러운 총리'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듯 하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불신임안이 14일(현지시간) 근소한 차로 하원에서 부결된 뒤, 로마 시내에서는 분노한 학생ㆍ시민들과 경찰이 충돌했다. AFP통신은 시위대와 경찰을 포함해 90명이 부상을 당하고 41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고, dpa통신은 부상자가 최소 1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로마에만 10만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으며, 밀라노 나폴리 칼리아리 바리 제노아 투린 등 주요 도시에서도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경찰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외치며 자동차를 불태우거나 돌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가스 살포와 강경진압으로 맞섰다. 시위대와 경찰이 서로 짓밟는 등 과격하게 맞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지아니 알레마노 로마 시장은 "70년대 이후 로마에서 발생한 가장 큰 시위"라며 "10년래 최악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시실리의 팔레르모에서는 500명의 학생들이 공항을 점거하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대학생 마리아나 마르텔로조(24)씨는 "이탈리아 국민인 것이 너무나 창피하다"며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는 끝났다"고 말했다. 안드레아스씨는 "경제위기를 추스를 생각도 안하고 '섹스 스캔들'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루시아노 카스텔라노(69)씨는 "내 손자에게 정직한 미래와 진실한 정부를 물려주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0대 성매매 등 잇단 추문과 독단적인 국정운영에도 이번 불신임안이 부결된 것은 우선 언론통제로 제대로 된 여론이 형성되지 않아 의회에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해 자신의 부패폭로를 막기 위해 도청자료와 감시비디오 보도 등을 금지한 언론통제법을 만들어, 언론사들이 총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불신임안 부결에는 베를루스코니가 내각이 흔들리면 유럽 재정위기에 대처가 어려울 것이라며 들고 나온 위기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위가 계속 확산될 경우 베를루스코니 정권은 2013년 예정된 총선까지 버티지 못하고, 내년에 조기총선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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