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주도해왔던 천주교계가 정진석(79) 추기경의 4대강 발언 논란을 계기로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정 추기경에 대한 진보적 사제들의 해묵은 불만과 함께, ‘진보적 사제’와 ‘보수적 신자’ 간의 충돌 양상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정 추기경의 4대강 발언을 ‘궤변’이라고 비난한 10일 이후 서울대교구 홈페이지에는 매일 100여건 이상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정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하는 글들도 속속 올라오지만 사제단을 ‘정치 신부’로 비난하는 내용이 상당수다. “4대강 사업이 뭐길래 교회가 이렇게 분열해야 되느냐” “4대강 찬성하면 죄냐” 는 등의 글들이다. 4대강 반대에 앞장서 온 사제들에 대한 평신도들의 불만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대교구평신도사도직협의회(서울평협)와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최홍준 회장은 14일 “4대강 사업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교회가 생태계 파괴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4대강 찬반 여부는 개인 소신 문제로 본다”며 정 추기경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는 원로 사제들의 정 추기경 용퇴 요구에 대해 “교회법에 따라 교구장이 75세가 되면 사표를 제출하는데, 수리 여부는 교황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사제들이 용퇴하라 마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날 회장단 모임을 가진 서울평협은 15일 교회 단합과 신자들의 돈독한 신앙생활을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평신도들의 이 같은 분위기는 여러 차례 4대강 사업을 비판해온 주교 및 사제들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해석 논란을 빚고 있지만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을 사실상 반대해왔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주교회의는 지난 3월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성명을, 10월에는 ‘4대강 사업이 난개발’이라는 환경 지침서를 냈고,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 등은 여러 차례 강론이나 기고를 통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도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 “주교회의 문건을 자세히 봤는데, 태도는 분명하다. (4대강 사업이) 전혀 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반환경적 계획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이의가 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주교회의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부터 이례적인데, 2000년대 들어 주교회의는 이라크전, 생명문화 등에 대해 7차례 성명을 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처음이다.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장은 “천주교가 2000년대 들어 교세가 늘긴 했지만, 대도시 중상류층 신자 위주로 늘어 교회의 중상류층화 문제가 제기돼왔다”며 “이번 갈등은 천주교 신자들의 보수화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은 “40대의 진보 성향 사제들이 교계 내에서 허리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들이 4대강 문제를 두고 보수적 신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며 “한국 천주교회도 앞으로 개신교처럼 지역과 계층의 이익에 따라 분화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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