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인수로 선회했을 때만해도, 우리금융지주는 독자 민영화의 길로 가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우리금융은 단기간 내에 엄청난 투자자금을 모집했고, 합병 걱정 없이 민간은행으로 재 탄생할 것으로 보였다. 우리금융 고위인사들은 "아직은 변수가 많다"면서도 독자 민영화의 대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13일 우리금융이 돌연 민영화 불참을 선언했다. 사실상 단독 응찰한 우리금융이 빠진다면, 민영화도 사실상 무산되는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도대체 왜 불참카드를 뽑게 됐을까.
우리금융 속내는
우리금융이 이날 입장발표를 통해 밝힌 불참의 이유는 두 가지. 현 상태로는 ▦유효경쟁이 성립하기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주기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줄곧 '시장이 납득할 만한 경쟁 입찰'을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예금보험공사 지분의 절반(28.5%) 이상을 사겠다는 후보가 복수(유효경쟁)여야 하고, 정부의 경영권을 넘기는 것인 만큼 매각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얹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매각기준이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로 빠져나가기 전만해도, 즉 민영화가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2파전으로 전개될 때만해도 이 기준은 충족되는 듯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의 이탈로 우리금융만 남게 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사실상 '유일'후보인 우리금융측은 정부의 매각조건이 비현실적이라며 물밑 협상을 벌여왔으나, 결국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부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우리금융은 입찰포기의 결정적 이유로 '가격'을 꼽고 있다. 그 동안 예보 지분 전량(56.97%) 인수를 목표로 10조원 넘는 투자금까지 확보했지만, 내심 생각했던 프리미엄 수준(최대 3%)과 정부의 기대수준(10%) 간 격차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측은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많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리금융의 입찰불참선언이, 독자 민영화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일 뿐'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즉, 향후 프리미엄 없는 '블록세일'(지분을 일정 부분씩 따로 떼어 파는 것)을 통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없는 민영화는 사실상 어렵다고 볼 때 향후 KB금융이 참여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유효경쟁은 어렵고, 그렇다면 정부가 지분을 나눠 시장에 팔 수 없을 밖에 것이란 판단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관계자도 "정부 보유 지분이 블록세일될 경우 이미 확보한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감해진 정부
정부로선 민영화 판을 다시 짜야 할 형편이다. 사실상 유일했던 후보가 사라진 마당에 인수의지나 경영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사모펀드와 외국계 자본만을 대상으로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기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매각 무산을 선언하고 다시 기준을 정해 민영화를 재추진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민영화 무산책임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그 동안 정부가 보여 온 '어정쩡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유효경쟁, 가격조건, 지방은행 분리매각 여부 등 매각의 핵심조건들을 미리 공개하지 않고, 민영화 과정 막판인 본 입찰 단계에 가서야 정하겠다고 미룬 것이 결국 불확실성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고위인사는 "유효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지 않은 점과 때론 '수의계약'도 가능하다고까지 하는 등 매도자로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못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끝까지 본전 생각(공적자금 회수)에만 집착함으로써 결국 민영화 자체를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면서 "과연 정부가 민영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은 우리금융 민영화가 다시 장기 미제로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정부가 새 기준을 마련해 재입찰에 나선다 해도 여전히 유효경쟁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데다, 블록세일방식을 택할 경우에도 '우리금융 페이스에 말렸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민영화를 못한다면 당분간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면서 "대선 총선 등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수반되는 인수합병 역시 재추진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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