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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높이를 가르쳐 준 화가,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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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높이를 가르쳐 준 화가, 샤갈

입력
2010.12.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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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살 때 집 근처에 벌집(La Ruche)이라고 불리는 아틀리에가 있었다. 3층으로 된 둥근 건물 속에 다닥다닥 붙은 조그만 작업실들은 실제로 벌집을 닮았다. 라 뤼슈는 이상적인 꿀벌의 공동체처럼 20개가 넘는 국적의 작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작업하던 창작의 산실이다. 이들에게 '에꼴 드 파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젊고 가난한 무명의 화가 샤갈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미술사가들은 샤갈이 라 뤼슈에 도착한 1911년부터 이후 10여년을 그의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는다. 이 시기의 대표작 , , 에는 그가 평생 즐겨 그렸던 유대인, 러시아, 연인이라는 주제가 나타난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展)'을 보러 가던 날, 굵은 눈발이 휘날렸다.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 때문이었을까? 눈 내리는 미술관 길이 마치 샤갈의 마을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에는 인적이 끊긴 고요한 밤, 눈마저도 날개를 접고 잠이 든 러시아의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내 영혼은 횃불처럼 떠다니고 있다"는 샤갈의 독백처럼 모두가 잠든 마을의 밤하늘에 무거운 짐을 진 유대인이 외롭게 떠돈다.

하늘을 나는 이미지는 오랜 세월 외국에서 보낸 샤갈의 부유하는 삶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핍박 속에 살아야 했던 유대인 샤갈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샤갈은 현실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했던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자유를 그림을 통해 찾았다. "나에게 그림은 창문이다. 나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고 한 것처럼 그림은 샤갈에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구가하는 방법이었다. "네 자신을 높이 던져라. 바람처럼 자유로워라. 너는 자유의 물질이 될 것이다"고 했던 바슐라르의 말과 같이 자신을 높이 던진 샤갈의 그림은 자유 그 자체다.

정신적인 삶은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높이를 지향하는 삶이다. 높이를 구현하는 샤갈의 그림은 그러므로 정신적이다. 샤갈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정신이 된다. 사람도 당나귀도 염소도 모두 자신의 물리적 무게를 버리고 스스로를 기체화 시킨다.

샤갈 예술의 원천은 사랑이다. 98세로 장수했던 말년의 작품까지 샤갈은 언제나 아내 벨라를 꼭 껴안고 비상하는 모습을 그렸다. 사랑하는 연인과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숭고함이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사랑은 인간이 그 존재 가치를 뛰어 넘어 가장 높은 곳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다. 1944년, 아내 벨라가 죽고 난 뒤부터 샤갈의 그림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었다.

샤갈전을 보면서 똑 같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운다.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는 가난하고 우울한 마을 이었다. 게다가 샤갈은 어렸을 때 게토라고 불리는 유대인 거주지역에 살았다. 하지만 비테프스크는 언제나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환상으로 나타난다. 그 위를 날고 있는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들 때문이다. 사랑의 힘으로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고향마을은 물론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불행한 현실마저 희망과 꿈으로 바꾸어 놓았다.

샤갈의 그림이 유달리 한겨울에 어울리는 것은 사랑의 온기 때문이다.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사람이 그리워지는 한겨울에 샤갈의 숭고한 사랑이 우리에게 온기를 건넨다.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올해가 가기 전에 못다 한 사랑과 감사를 나누라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주위를 돌아보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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