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현실 앞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회피하지 않았고 도덕적 삶을 살아간 박은식(1859~1925) 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09년, 적폐 현상을 보이던 주자학적 유교를 양명학적 유교로 개혁해 국권 회복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주장한 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 박은식. 그가 대중에게 유교구신론의 정당성을 설파한 책 가 처음으로 번역됐다. 한문으로 씌어진 는 박은식이 1910년 잡지 ‘소년’에 게재한 것으로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1472~1528)의 일대기와 사상을 소개하며 자신의 논평을 덧붙인 내용이다. 일제는 양명학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이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당시 ‘소년’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꼭 100년 만에 이 책을 번역한 이종란(54ㆍ서울 외발산초등학교 교사)씨는 조선 후기 철학 전공자로 (2006), (2008) 등 아동용 한국철학 개론서를 꾸준히 출간해 왔다. 그는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 말 학문 풍토에서 양명학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은 박은식 선생이 처음”이라며 “이 책에는 ‘과연 유교를 현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치열한 고뇌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유교 개혁을 통해 나라를 되찾자는 박은식의 시도는 시대착오가 아니었을까? 이씨는이러한 의문에 대해 “고종 인산일에 즈음해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난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유교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정신적 기반이었다”며 “이런 맥락에서 박은식 선생의 사상 전환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사상이 왜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교조화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불굴의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자율적이고 유연하게 사상을 수용했던 박은식 선생의 사상가적 면모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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