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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못 위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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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못 위의 잠

입력
2010.12.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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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가로등이 아닌 달빛이 그림자 만들어주는 가로등도 없는 길이구나. 골목이 좁아 귀가하며 손잡은 세 식구의 그림자 벽에 접혔었겠다. 길이 좁아 가족들 대열에 설 수 없는, 아니 설 수 있는 길이라도 차마 같이 서지 못하고 한 걸음 뒤처져서 자식들과 아내 그림자 보며 귀가하는 아비의 마음, 아비의 그림자 쓸쓸하다.

제비들도 사랑방은 아비가 쓰나보다. 침입자에 대한 경계심 끝내 풀지 않았을 초소, 못 하나. 새끼들 날 때까지 말뚝근무 섰을 제비 한 마리, 서러운 이름 아비.

제비의 삶과 사람의 삶이 닮았구나. 모든 삶은 서로의 삶의 그림자인가.

모든 지상의 그림자는 서정성 가장 짙은 거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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