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그야말로 스포츠의 해였다.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광저우아시안게임까지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이 줄지어 열렸다.
한국은 밴쿠버올림픽에서 캐나다, 미국 등에 이어 종합 5위에 오르며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고,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를 올렸다. 이어 아시안게임에서는 4회 연속 종합 2위에 올라 '스포츠 코리아'의 굳건한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온 국민을 가슴 벅차게 했던 환희와 감동의 순간들을 돌아본다.
김연아(20ㆍ고려대)는 아팠다. 밴쿠버동계올림픽 한 달 전 왼쪽 발목에 부상을 입어 정상적인 훈련이 어려웠다.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을 앞둔 오전 연습에서는 점프를 뛰다 크게 넘어지기까지 했다.
연습 때 살짝 넘어지는 정도야 흔한 장면이지만 김연아가, 그것도 펜스로까지 밀려 나갈 만큼 크게 미끄러지는 장면은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올림픽 시즌'인 2009~10시즌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기에 쏟아지는 각계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겨퀸'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경쟁자들과 월등한 실력차를 보이며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얻었다. 처음 피겨 부츠를 신었을 때부터 오로지 올림픽 금메달만을 위해 고통을 견뎌 온 김연아였다.
2월24일(한국시간) 퍼시픽 콜리시엄에서 쇼트프로그램을 연기한 김연아는 78.50점으로 1위에 오른 뒤 "연습 때 넘어졌던 일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 베스트 컨디션이다. 그동안 올림픽까지 시간이 빨리 가지 않아서 많이 기다렸다"고 말했다.
과연 퀸다운 자신감이었고,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 26일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이틀 전의 장담을 몸으로 증명했다. 150.06점으로 역대 최고점. 합계 228.56점 역시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라이벌 구도를 이뤄 온 일본의 아사다 마오(205.50점)와는 무려 23점 이상 차이가 났다.
한국 피겨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로 여자 싱글 사상 최초의 '그랜드슬래머'가 된 김연아는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다"면서 웃었다. 피겨 입문 후 처음으로 연기를 끝내자마자 눈물을 훔쳤고, 시상대 위에서도 펑펑 울었던 김연아다.
피겨퀸의 대관식을 목격한 외신들은 김연아를 현역뿐 아니라 역대 '전설'들과의 비교에서도 첫손가락에 꼽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인물을 놓고 전 세계 언론들이 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 이론의 여지없이 앞다퉈 칭찬하는 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꿈만 같은 올림픽 금메달을 뒤로 하고 김연아는 다시 부츠 끈을 조였다. 2009~10시즌의 마지막 대회인 3월 토리노세계선수권대회가 남아 있었다. 물론 직전 시즌 세계선수권에서 우승 경험이 있었던 데다 올림픽 제패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기에 출전을 놓고 고민이 많았지만, 시즌 전관왕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았다.
복잡한 머리를 이고 출전한 토리노세계선수권.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60.30점으로 7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올림픽 후유증' 속에 허탈감에 빠진 탓에 제대로 훈련한 건 일주일이 채 안됐다. 그래도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의 분전으로 아사다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에서의 완벽한 금메달과 세계선수권에서의 생각지도 않았던 실수, 이어 정신력으로 일궈 낸 차선의 결과는 피겨퀸이 아닌 '인간 김연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이어졌다. "올림픽 후 심리적으로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쇼트 연기 후)'내가 왜 나갔을까' 후회도 했다"는 그의 솔직한 말은 올림픽 금메달만큼이나 큰 반향을 불렀다.
김연아는 내년 3월 도쿄세계선수권에 나설 예정이다. 토리노세계선수권 이후 딱 1년 만의 대회 출전. 김연아가 빠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1등이 180점을 겨우 넘는 등 전반적인 침체 속에 나서는 '여왕의 귀환'이다. 긴 공백에도 여전히 세계랭킹 1위인 김연아는 미국 LA에서 피터 오피가드 코치와 새로운 신화를 준비 중이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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