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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김정일이 떠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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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김정일이 떠나야

입력
2010.12.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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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의 신수(身手)가 훤하다. 지난 주 평양을 찾은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과 나란히 걷는 모습은 두어 달 전의 병약하고 노쇠한 몰골과는 딴판이다. 아들을 후계로 세운 9월말 당 대표자회의 때만해도 옷이 헐렁하던 몸에 살이 붙고 얼굴도 좋아졌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진 못했겠지만, 저들의 우상화 선전으로는 인민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유족(裕足)한 얼굴과 풍채를 되찾은 모습이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몸이 더 마르고 머리 숱도 더 성긴 듯하다. 그만큼 자신감과 열정도 줄어든 것으로 비친다. G20 정상회의 주최를 한껏 자랑할 겨를도 없이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다시 맥 없이 당하는 바람에, 국가 보위 책임을 짊어진 대통령의 권위와 지도력이 흔들린 때문일 것이다.

도발로 남한 흔들고 신수 좋아

대통령은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사과하고 단호한 대응을 다짐했다. 그러나 여론은 수십 년 전 군대 안간 흠을 꼬집으며 '장군용 가죽점퍼'차림까지 시비한다. 지난 정부의 추억에 사는 진보세력은 "햇볕정책을 버리고 북한의 고사(枯死)를 기다린 대북정책 탓"이라고 마냥 욕한다. 매사 MB 탓을 하는 이들이니 그러려니 여길 수 있지만,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 민심이 등 돌리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일흔이 가까운 대통령의 기력이 떨어질 만 하다. 뚜렷한 근거 없이 "북한 주민이 변하고 있고 통일도 머지 않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부른 것도 그런 난감함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런 남북 지도자의 처지는"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속담과도 어긋나게 뒤바뀐 꼴이다. 민간지역을 무차별 포격한 북의 유일 지도자가 여유로운 낯빛인 것은 특히 진보 지식인들의 진단과 동떨어진다. 어제 아침 신문에서도 어느 진보 논객은 "벼랑에 몰린 북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 도발을 되풀이한다"며 무심한 MB를 나무랐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미국 학자가 5월에 쓴'김정일의 마음'이란 글을 떠올렸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동아시아연구센터 소장 리처드 부시는 북한의 천안함 도발 의도를 김정일 스스로 자랑하는 형식의 글로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천안함 폭침은 핵을 포기할 뜻이 없는 터에 중국이 6자회담을 재촉한 때문이다. 김정일은 이를 마오쩌둥(毛澤東)이'천하 대란'으로 반혁명 세력을 교란한 전략에 비유했다. 위험을 무릅쓴 도발로 남한의 내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와 중국은 김정일의 뜻대로 움직였다. 다만 미국의 오바마는 생각보다 강했다. 클린턴 대통령처럼 강경자세를 허물고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애써 회유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자신의 사후 아들의 후견인 역할을 할 지도부를 미국이 설득, 핵 포기와 개방의 재앙으로 이끌 것을 걱정했다.

한갓 가상적 추리일 뿐일까. 리처드 부시는 9월 '북한의 도전: 먹구름 속 유일한 희망'이란 정책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첫 번째 결론도 건강과 후계 위기에 처한 김정일이 미국과 일본의 생존 보장과 지원 약속만 믿고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또 과도기 북한은 도발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핵 협상을 회피하며 핵 능력을 완성하고'서울 불바다'위협을 상기시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북의 연평도 포격과 잇단 위협은 이런 예상과 일치한다.

북한이 변할 유일한 희망

보고서의 제안을 간추리면, 북의 도발에 무력시위 등으로 단호히 대응하되 중국의 우려를 자극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북한의 후계체제를 이끌 세력에게 체제 존속에 바람직한 길을 일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 이후를 걱정하는 중국의 우려를 달래야 한다. 북을 편든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압박과 달래기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보고서의 결론은 김정일이 떠나야 북한을 바꿀 유일한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제 그 희망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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