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당 몇 백만 원의 호화맨션이 꽃핀 자리/ 산에서 뽑혀 온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값도 못 되는/ 긴 노동의 품삯을 쥐고/ 지난 날 그 황량하던 벌판만이 제 몫인 떠도는 뿌리들/ 웅크려 떨고 있는 발자욱 지우며 /눈이 내린다./ 흩어지면 더 큰 외로움이 저 홀로 얼어붙는 이 저녁/ 서로의 체온이 더 그리운 겨울밤이 내리고/ 바람 불면 또 밑둥까지 흔들리는 함바를 찾아드는/ 추위여/ 찢어진 판자벽 틈새로 파고든 외풍의 퍼런 서슬에/ 어둠 한 채 이불 밑, 더욱 웅크리고 누운/ 잠 속으로(중략)…꿈결이듯 눈이 내린다.(김신용 )
■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전 재산을 털어 서울 변두리에 작은 땅을 사 직접 집을 지었다. 공사는 수개월 동안 인부들이 숙식을 해결할 함바집을 짓는 것으로 시작됐다. 나무 판자와 슬레이트를 엮어 만든 함바집에서 어머니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세 끼 식사에 새참까지 만드셨다. 공사장에서 아저씨들 틈에 끼여 앉아 허연 김을 후후 불어가며 먹던 멸치국수 맛은 일품이었다. 가끔 회식도 열렸다. 아저씨들은 장작불에 돼지고기를 굽고 대병 소주를 나눠 마시며 '뽕짝'을 불렀다. 그때는 몰랐다. 아저씨들이 뽕짝에 서러움과 한을 실어 날려 버린다는 것을.
■ 함바집은 '공사장, 광산 현장의 인부 숙소'라는 뜻의 일본말 '한바(はんばㆍ飯場)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숙소보다는 공사장 현장 식당이라는 의미로 더 통용돼 왔다. 대개 허름한 가건물인 함바집의 상징은 값싸고 푸짐한 식사. 고봉밥은 기본이고, 김치는 무한 제공되며, 끼니마다 고기류가 빠지지 않는다. 일당 몇 만원을 손에 쥔 인부들은 일이 끝나면 그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애환을 달랬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큰 변화가 생겼다. 대형 공사장 함바집이 큰 수익을 내자 함바집 운영 전문기업이 생겼다. 심지어 함바집 투자 상품까지 등장했다.
■ 자연 함바집 운영권 선점 경쟁이 벌어졌다. 건설사들은 쾌재를 부르며 뒷돈을 받고 운영권을 팔았다. 최근 검찰 수사가 보여주듯 이같은 관행은 건설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다. 한화건설 SK건설 등 10여 개 대형 건설사 고위 임원들이 예외 없이 걸렸다. 지난달에는 이기하 전 오산시장이 건설사 측에 인허가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함바집 운영권을 특정인에게 주도록 한 혐의 등으로 7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인부들이 단돈 몇 천원으로 행복감을 맛보는 함바집마저 탐욕 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세태가 한탄스럽다. 하지만 함바집 인심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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