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16일부터 5,000원짜리'통 큰 치킨'의 판매를 중단한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 속에 판매를 시작한지 닷새만에 상생ㆍ공정이라는 사회적 화두 앞에 사실상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소비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적잖은 과제를 남겼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일단 제동
무엇보다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영업 행태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만여 곳에 달하는 프랜차이즈 및 개인 치킨점 운영자 중 상당수가 영세자영업자이기 때문이다. 롯데마트가 치킨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 자체가 자금력과 영업망, 브랜드 파워 등에서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롯데마트는 판매중단조치를 "다양한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까지 나선 데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결국 한 마리당 1,200원 정도 손해보고 판매하는 것"이라고 꼬집은 건 동반성장과 공정거래라는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에 반한다는 사인을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쟁의 틀과 영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사실 롯데마트의 치킨 판매는 '싼 값에 양질의 제품을 살 소비자의 권리'와 '생계수단으로 치킨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쪽은 프랜차이즈 치킨점의 3분의 1 가격에 파는 것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혀준다고 강조했다. 나흘간 10만마리 가까운 통큰 치킨이 전량 조기매진된 점, 일부 네티즌들이 판매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나선 점 등이 이를 보여준다.
반면 골목상권을 옹호하는 쪽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기업이 치킨을 미끼로 고객을 싹쓸이하는 건 영세상인들에 대한 '살생'이라고 비판한다. "통큰 치킨은 헤비급 선수가 플라이급 경기에 뛰어드는 것"(노회찬 전 의원)이란 비유까지 나온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마트 피자'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대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주장했던 사실을 거론한 뒤 "영세상인의 생존권과 소비자의 선택권을 대립시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정부가 불공정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되 기업형슈퍼마켓(SSM) 관련법처럼 경쟁의 틀과 영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랜차이즈 가격담합 논란에 당국 조사 착수
롯데마트의 치킨시장 진출의 불똥은 프랜차이즈 업계로 옮아가고 있다. 10일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상위 5개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와 한국치킨외식산업협회를 상대로 가격 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10월 민주당 이성남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개가 훨씬 넘는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중 상위 5개사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58%, 상위 10개사는 67%에 달한다. 이들 업체의 점유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로, 치킨값은 2000년대 초반 8,000원대에서 1만6,000~1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이번에 일부 공개된 치킨점의 원가 내역을 보면 프랜차이즈가맹본부가 가맹점주들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치킨용 생닭의 납품가가 4,000원을 밑도는데 가맹점주들은 5,500원이 넘는 가격에 공급받고 있고, 종이 포장용기와 무 담는 비닐팩도 각각 500원, 300원 가량 된다. 한 브랜드 치킨점 업주는 "가격이 다소 비싼 건 알지만 우리한테 남는 건 별로 없다"고 했다.
8월 이후 비판여론 속에서도 피자 판매점을 계속 확장해 온 이마트에도 눈길이 쏠린다. 이마트 측은 "피자와 치킨은 시장이 다른 만큼 피자를 계속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대기업이 대표적인 서민업종에 진출해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한 중소유통업체 관계자는 "롯데마트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관행적인 행태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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